시 145:1-8
1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4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5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이한 일들을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6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권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7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8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습 2:13-15
13 여호와가 북쪽을 향하여 손을 펴서 앗수르를 멸하며 니느웨를 황폐하게 하여 사막 같이 메마르게 하리니
14 각종 짐승이 그 가운데에 떼로 누울 것이며 당아와 고슴도치가 그 기둥 꼭대기에 깃들이고 그것들이 창에서 울 것이며 문턱이 적막하리니 백향목으로 지은 것이 벗겨졌음이라
15 이는 기쁜 성이라 염려 없이 거주하며 마음속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더니 어찌 이와 같이 황폐하여 들짐승이 엎드릴 곳이 되었는고 지나가는 자마다 비웃으며 손을 흔들리로다
마 19:23-30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1)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주말 묵상 (게시판 업로드용)
나 외에는 없다는 착각
니느웨는 잴 수 있는 성이었습니다. 성벽의 높이를, 곳간에 쌓인 곡식의 양을, 백향목 기둥의 둘레를 니느웨는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잴 수 있는 것은 다스릴 수 있는 것이었고, 다스릴 수 있는 것 앞에서 니느웨는 마침내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습 2:15). 모든 것을 자로 잴 수 있다고 믿는 세계에서는, 그보다 자연스러운 결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의 마지막 모습은 니느웨가 한 번도 재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각종 짐승이 떼로 누웠고, 당아와 고슴도치가 무너진 기둥 꼭대기에 깃들였으며, 문턱은 적막해졌습니다(14절). 지나가는 자마다 손을 흔들며 비웃었습니다(15절). 니느웨의 자는, 끝내 니느웨 자신을 재지 못했습니다.
이 잣대는 성벽이 없어도 얼마든지 사람의 마음 안에 세워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그런 잣대 하나를 다시 꺼내 보이십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3-24절). 낙타는 그 시대 가장 큰 짐승, 바늘귀는 가장 작은 구멍, 이 역시 잴 수 있는 크기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극단적인 잣대로 겨누신 것은 재물의 크기가 아니라, 많이 가진 자의 마음에 조용히 자리 잡는 확신, "이만큼 쌓았으니 나는 안전하다"는 니느웨의 그 문장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몹시 놀라 되묻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25절). 이 물음 역시, 여전히 잴 수 있는 세계 안에서 나온 물음이었습니다. 누가 충분히 가졌고 누가 충분히 의로운가를 여전히 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물음 앞에서 예수님은 자로는 도무지 잴 수 없는 대답을 내놓으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6절). 이 한마디는 지금까지의 모든 잣대를 무효로 만듭니다. 얼마나 가졌는가, 얼마나 버렸는가, 얼마나 의로운가 — 이 모든 물음이 갑자기 질문 자체가 될 수 없는 자리로 옮겨갑니다. 니느웨가 알던 세계에는 이런 대답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재어졌고, 결국 그 자 위에서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바로 이 다른 세계의 언어로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3절). 니느웨는 모든 것을 잴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입술로 스스로를 높였지만, 시편 기자는 잴 수 없다고 고백하는 그 입술로 하나님을 높입니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2절)라는 고백은, 자를 손에서 내려놓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저마다의 자를 하나씩 쥐고 살아갑니다. 얼마나 이루었는가, 얼마나 가졌는가, 얼마나 인정받았는가를 재는 자 말입니다. 그 자로 세상을 사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문제는 그 자를 하나님 나라 앞에까지 들고 가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자로 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 정교하게 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재는 습관 자체를 내려놓고 전혀 다른 가치의 질서 속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듣고 정직하게 묻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27절). 이 역시 여전히 자를 손에서 놓지 못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그 자의 눈금을 키운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29절)는 약속은 우리가 버린 것의 더 큰 버전이 아니라, 자로는 잴 수 없는 다른 차원 자체에 속하게 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못박으십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30절). 순위가 바뀐다는 말이 아닙니다. 먼저와 나중을 가르던 그 줄, 그 자 자체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는 자리로 옮겨간다는 말입니다. 니느웨의 자는 끝내 니느웨 자신을 재지 못하고 무너졌지만, 자를 내려놓은 자들은 이미 측량할 수 없는 그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여러분, 이번 한 주 우리의 자를 하나님 나라 문턱에 내려놓고, 그 문턱 너머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모든 자로도 잴 수 없이 위대하신 하나님,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저마다의 자를 들고 주님 앞에 서서 스스로를 재고, 서로를 재며 살아온 날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홀로 이루시는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시고, 우리의 자를 내려놓아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다스림, 그 다른 차원에 온전히 속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