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8월 29일-시 26:1-8, 렘 15:10-14, 마 8:14-17 [주말묵상] 내 짐을 만지시는 손
시 26:1-8
1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3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4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5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6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
7  감사의 소리를 들려 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리이다
8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렘 15:10-14
10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12  2)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13  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 네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 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14  네 원수와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라


마 8:14-17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내 짐을 만지시는 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 이런 말을 마음속으로 삼켜본 적이 있으십니까? 예레미야는 그 말을 삼키지 않고 그대로 토해 냅니다.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렘 15:10).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만으로 온 세상과 다투는 자가 되었습니다. 빚진 것도, 빚을 준 것도 없는데 모두가 그를 저주합니다. 이것은 정제된 신앙 고백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향한 날것의 탄식입니다.

그런데 같은 성서정과 안에서 시편 기자는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시 26:1). 그는 자신의 결백을 자신 있게 내어놓으며 하나님께 검증을 요청합니다.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시 26:2). 한 사람은 존재를 저주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한 사람은 성실을 자부하며 하나님 앞에 섭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숨기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간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 탄식에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렘 15:11). 무너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다시 세우겠다고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곧이어 본문은 냉정한 현실을 덧붙입니다.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렘 15:12) — 죄로 굳어진 마음은 그만큼 단단해서, 백성의 모든 재산과 보물이 값없이 탈취당하는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렘 15:13-14). 위로의 약속과, 공동체가 짊어져야 할 죄의 무게가 한 본문 안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위로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무거움이 여기 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마태복음은 전혀 다른 종류의 짐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워 있었습니다. 이 열병은 누군가의 죄 때문에 찾아온 짐이 아닙니다. 그저 몸이 지치고 계절이 바뀌면 찾아오는, 아무 잘못 없이 짊어지는 삶의 무게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먼저 찾아가셔서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마 8:15), 그러자 여인은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드니라"고 본문은 전합니다. 열이 내렸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다시 자기 자리로, 자기의 일상과 섬김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그날 저물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병들고 지친 이들을 데리고 나왔고,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고쳐 주셨습니다. 마태는 이 장면을 이사야의 예언으로 설명합니다.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 8:17). 예레미야가 홀로 감당해야 했던 무게, 시편 기자가 스스로 서 있어야 했던 그 자리에, 예수님은 심판자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짊어진 그 사소하고도 어찌할 수 없는 짐을 먼저 만지고 짊어지시는 분으로 찾아오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매일 지는 짐이 모두 죄의 무게는 아닙니다. 몸이 아파서 약속을 못 지킨 날, 잠을 설쳐 아이에게 짜증을 낸 아침, 컨디션이 무너져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하루 — 이런 날들 앞에서 우리는 종종 죄책감부터 느낍니다. 마치 내가 무너졌기 때문에, 내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요. 그러나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이 죄 때문이 아니었듯, 우리의 많은 짐도 그저 삶이 우리에게 지운 무게일 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그 짐을 스스로 해결하고 정돈해서 나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열병으로 누워 있는 그 자리,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로 그 자리로 먼저 찾아오셔서 손을 얹으십니다. 그 손길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나 오늘의 자리로, 오늘 감당해야 할 섬김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죄책감으로 짓눌린 무게가 있다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무게는 심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짐 받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먼저 찾아오시는 그 손 앞에 오늘의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으시고, 다시 일어나 여러분의 자리를 살아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때로는 예레미야처럼 존재 자체가 버거워 탄식하고, 때로는 시편 기자처럼 홀로 서서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씁니다. 죄 때문이 아닌데도 무너진 몸과 마음 앞에서 스스로를 탓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일어나지도 못한 그 자리로 먼저 찾아와 손을 얹으시는 주님을 오늘 다시 바라봅니다. 오늘의 지친 짐을 이 손 앞에 내려놓게 하시고, 다시 일어나 우리의 자리로 돌아가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29/2026 6:24:00 AM

There is no comment yet...
의견 등록을 하시려면 로그인 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