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19:129-136
129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130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131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132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133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134 사람의 박해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135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136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왕상 2:1-4
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마 12:38-42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표적보다 먼저 필요한 것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기울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께 조건을 하나 겁니다. "내일 이 일에 대해 누군가 먼저 연락이 오면, 그것을 응답으로 알겠습니다."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정을 미룹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새로운 조건을 겁니다.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그는 정작 확인할 표적만 기다리며 제자리에 서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보고 들었으면서도,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청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마 12:38).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흥미롭습니다.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 12:39). 요나의 표적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예수님은 곧바로 풀어 주십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마 12:41). 니느웨 사람들을 움직인 것은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나온 기적을 목격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광경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을 회개시킨 것은 다만 "요나의 전도", 곧 선포된 말씀이었습니다. 뒤이은 남방 여왕의 이야기도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마 12:42). 여왕을 움직인 것도 신비한 표적이 아니라 "지혜로운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표적을 구하는 이들에게 정말로 주시려는 것은 더 큰 기적이 아니라 더 큰 말씀입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42)는 선언은, 지금 그들 앞에 계신 이의 말씀이 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답이라는 뜻입니다.
표적과 말씀은 그저 다른 두 가지 방법이 아닙니다.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표적은 한 번 확인하면 그 순간으로 끝나 버리지만, 말씀은 붙든 뒤에도 매일 다시 걸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던 날, 다윗은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지만 그 안에는 어떤 표적도, 한 번의 확증도 없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3). 다윗이 남긴 것은 확인하고 끝날 증거가 아니라, 남은 평생 계속 붙들고 걸어야 할 말씀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 말씀의 성격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 표적은 어둠 속에서 한 번 켜졌다 꺼지는 섬광과 같지만, 말씀은 열 때마다 다시 비추는 빛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시 119:133)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시편은 그 반대의 경우를 놓치지 않고 보여 줍니다.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시 119:136). 말씀을 붙들지 않은 자리에는 눈물이 남습니다. 표적을 기다리다 놓친 오늘들, 말씀 대신 조건을 걸며 흘려보낸 시간들이 결국 우리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표적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이미 마음에 답이 있으면서도, 확인할 무언가가 나타나기까지 걸음을 미루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니느웨 사람들을 움직인 것도, 남방 여왕을 이끈 것도, 다윗이 죽음 앞에서 붙든 것도 모두 같은 하나였습니다. 한 번 보고 끝나는 표적이 아니라, 매일 다시 열어야 할 말씀이었습니다.
특별한 표적을 기다리며 오늘의 걸음을 유보하는 우리가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그 말씀을 따라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길 끝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발걸음을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자주 확실한 표적을 구하며 오늘의 순종을 미루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표적이 아니라 전도된 말씀에 회개했듯, 남방 여왕이 지혜의 말에 이끌렸듯, 우리도 눈에 보이는 증거가 아니라 이미 열린 주의 말씀 앞에 반응하는 자 되게 하소서. 말씀을 붙들지 못해 흘려보낸 시간들을 용서하시고, 다윗이 죽음 앞에서도 붙잡았던 그 말씀 위에 오늘 우리의 발걸음을 굳게 세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