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6월 27일-시 89:1-4, 15-18, 렘 28:1-4, 눅 17:1-4 [주말묵상] 거짓 위로라는 맷돌
시 89:1-4, 15-18
1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2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3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셀라)
15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16  그들은 종일 주의 이름 때문에 기뻐하며 주의 공의로 말미암아 높아지오니
17  주는 그들의 힘의 영광이심이라 우리의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지오리니
18  우리의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의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니이다


렘 28:1-4
1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 기브온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3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4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니라



눅 17:1-4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거짓 위로라는 맷돌
누군가 아픈 친구에게 "괜찮을 거야, 곧 나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따뜻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 한마디는 친구에게서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위로처럼 들리는 거짓말, 사랑처럼 보이는 회피. 이런 말이 때로는 차가운 진실보다 더 깊이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예레미야 28장에는 바로 그런 장면이 등장합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성전 한가운데 서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을 가장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칩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렘 28:2). 하나냐의 말은 모두가 갈망하던 약속이었습니다. 두 해 안에 포로들이 돌아오고, 빼앗긴 성전 기구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의 멍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멍에 아래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더 깊은 회개와 신앙을 배워야 했습니다. 하나냐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했고, 그 결과 백성은 곧 닥칠 현실 앞에서 영적으로 무방비 상태가 되었습니다. 거짓 위로가 잔인한 이유는, 진실 앞에 설 힘을 미리 빼앗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을 가장 엄중하게 꾸짖으셨습니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눅 17:2). 작은 자, 곧 연약한 자, 갓 믿기 시작한 자, 마음이 흔들리는 자에게 거짓된 길을 가르치고 잘못된 위로를 건네는 일은, 자기 목에 맷돌을 매다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자란 단지 큰 범죄를 저지르는 자만이 아닙니다. 듣기 좋은 말로 형제를 안심시키며 하나님을 잊게 하는 자,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든 말과 모든 회피가 다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냐는 사람들을 위로한 것이 아니라, 결국 그들의 목에 맷돌을 매단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위로는 어디에 있을까요? 시편 기자는 노래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시 89:1). 참된 위로는 두 해 안에 멍에가 꺾인다는 약속에 있지 않고,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있습니다. 시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시 89:15). 우리의 방패가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의 왕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께 속하였기 때문에(시 89:18), 우리는 거짓 위로 없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니, 거짓 위로 없이라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거짓 위로에 익숙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 무너지고 있을 때 우리는 "괜찮아, 잘 될 거야"라고 너무 쉽게 말합니다. 신앙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면 다 잘 됩니다", "믿음만 있으면 곧 해결됩니다." 진심에서 나온 말일 수 있지만, 그 말이 듣는 이에게는 직면해야 할 현실을 외면하게 하는 맷돌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위로는,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의 인자하심 앞에 머무는 시간입니다. 두 해의 약속을 흉내내지 말고, 영원한 인자하심을 함께 노래해야 합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또 한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눅 17:3-4).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엄중한 명령 다음에 곧바로 용서하라는 명령이 따라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누구나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본의 아니게 실족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정죄하는 능력이 아니라, 일곱 번이라도 다시 받아들이는 용서의 능력입니다. 경고할 것은 경고하되, 돌아오는 자는 받아주는 것 — 이것이 거짓 위로가 아닌 참된 사랑의 자리입니다.

하나냐는 두 해를 약속했지만, 하나님은 영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온 달콤한 약속은 결국 깨지지만, "주의 성실하심"은 하늘에서 견고히 서 있습니다(시 89:2). 이번 한 주, 누군가에게 거짓 위로를 건네느라 진실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일곱 번 넘어진 형제에게 일곱 번 손을 내미는 용서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지고, 우리의 방패가 여호와께 속한 한 주가 되시도록(시 89:17-18),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우리는 종종 듣고 싶은 말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거짓된 위로를 건네기도 합니다. 우리의 입술과 귀를 지켜 주시옵소서.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일곱 번이라도 형제를 용서하는 자리에 우리를 세워 주시옵소서. 두 해의 헛된 약속이 아니라 영원한 인자하심에 우리의 소망을 두게 하시고, 주의 얼굴 빛 안에서 이 한 주를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6/27/2026 1:14: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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