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69:7-10, 16-18
7 내가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나의 얼굴에 덮였나이다
8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
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10 내가 곡하고 금식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으며
16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에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
17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18 내 영혼에게 가까이하사 구원하시며 내 원수로 말미암아 나를 속량하소서
렘 20:1-6
1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2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
3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에서 풀어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1)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5 내가 또 이 성읍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중품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리라
6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이 포로 되어 옮겨지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너의 거짓 예언을 들은 네 모든 친구도 그와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눅 11:53-12:3
11: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12:1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2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제목: 골방의 속삭임이 지붕 위에서 들릴 때
어느 시대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외롭습니다. 더 외로운 것은, 그 진실이 가장 신앙적이어야 할 자리에서 가장 거센 반대를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성전 마당에서 매를 맞고 목에 나무 고랑이 채워졌습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사람은 이방의 왕도, 우상 숭배자도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었던 제사장 바스훌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도 같은 외로움을 토로합니다.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같은 자리에 서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노리고 있었습니다. 진실은 늘 이렇게 포위당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포위 한복판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단호히 경고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예레미야서 20장은 한 폭의 잔혹한 그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매를 맞고, 베냐민 문 위층 고랑에 묶여 밤을 새웁니다. 그를 묶은 '바스훌'이라는 이름은 본래 평안과 번영을 함의하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풀려난 예레미야는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향해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마골밋사빕은 "사방에 두려움"이라는 뜻입니다. 평안을 가장한 자에게 하나님은 그의 진짜 정체를 들춰내십니다. 그가 다른 이에게 가했던 두려움이 그 자신에게로 돌아갈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위선의 이름표는 결국 떨어지고, 그 안의 실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시편 69편의 기도자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는 가족에게마저 낯선 사람이 되었고, 곡하고 금식하는 것조차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절규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그가 의지할 곳은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뿐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모든 흐름의 정점에 서십니다. 그분을 둘러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 입에서 트집 잡을 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수만 명의 무리가 서로 밟힐 만큼 몰려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위선은 결국 폭로된다는 것, 이것이 진실 편에 선 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위로이자 권면입니다.
여러분, 이 세 본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신앙의 길은 외롭고, 때로는 가장 신앙적이어야 할 자리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가족에게 낯선 자가 되고, 동료에게 비방을 받고, 종교적 권위 앞에서 따져 물음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자리에서 한 가지 확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감추인 것은 반드시 드러난다. 어둠 속에서 속삭여진 모든 말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골방에서 귀에 대고 한 말이 지붕 위에서 전파됩니다. 위선을 부리는 자에게도, 진실을 지키는 자에게도, 이 말씀은 똑같이 적용됩니다. 즉 우리의 모든 삶, 모든 동기와 말과 행동이 결국에는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두 가지 방향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첫째, 우리는 바스훌이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직분과 자리가 거룩하다 하여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자동으로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거룩한 자리에서도 가장 위선적인 모습이 가능합니다. 우리의 겉과 속이 일치하고 있는지, 혹시 신앙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짓밟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 예레미야처럼, 시편 기자처럼, 진실을 지키다가 외로운 자리에 서게 될 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인정이 늦거나 영영 오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그분이 바스훌의 이름을 바꾸셨듯이, 위선의 가면을 결국 벗기시고, 진실 편에 선 자의 이름은 친히 기억하실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을 보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보이는 자리에서가 아니라 골방에서, 박수받는 시간에서가 아니라 외로운 시간 속에서, 우리의 진짜 모습이 빚어집니다. 그리고 그 골방의 속삭임마저 언젠가 지붕 위에서 들릴 것이라면, 우리의 골방은 거짓의 자리가 아니라 기도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가 환난 중에서도 "내 영혼에게 가까이하사 구원하시며"라고 부르짖었듯이, 우리의 외로움도 결국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 한 주 우리의 골방에서 어떤 말이 새어 나가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시기를, 그리고 외로운 자리에 서 계신 모든 분께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속히 응답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진실을 말하다가 외로워지는 자리, 신앙의 이름 아래에서 도리어 상처받는 자리에 우리가 설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시편 기자처럼 부르짖게 하시고, 예레미야처럼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무엇보다 우리 주님처럼 침묵 속에서도 진실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동시에 우리 안의 바스훌을 살피게 하옵소서. 거룩한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거룩하다 자만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겉과 속이 주님 앞에서 일치하게 하옵소서. 골방의 속삭임마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하시고, 감추인 것이 드러나는 그 날에 주님 앞에서 기쁨으로 발견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