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사람복음8: 이 세대의 아들들과 빛의 아들들(눅16:1-13, 2016년2월21일 주일)

사람복음8:이 세대의 아들들과 빛의 아들들(16:1-13, 2016221일 주일)

 

    내가 대학생 때, 교회 대학부를 담당하시던 목사님이 나를 포함한 대학부 임원들을 불러서는 맛있는 것을 사 주겠다며, 고급 소고기 집에 데리고 갔습니다. 실컷 맛있게 먹고 보니 돈이 꽤나 나갈 것 같아서, 내가 염려가 되어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오늘 돈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어쩌죠?” 그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괜찮다. 나는 지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는 거다.”” “무슨 불의의 재물이 생겼나요? 받으면 안 되는 돈이라도 받으셨나요?”라고 돼 물었더니, “그게 아니고, 그냥 공돈이 갑자기 생겨서너희들 환심 좀 사려고 내가 한 턱 내는 거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후로 이것을 교훈 삼아 갑자기 돈이 좀 생겼을 때, 친구들에게 맛있는 거 사주면서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는 거다.”

 

    시간이 흘러서 내가 신학공부를 하고, 이 본문을 유심히 묵상하면 할 수록, 이 성경 구절을 단순하게 사용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만큼 오늘 본문은 해석하기도 까다로울 뿐더러, 적용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학자들마다 이 본문이 누가복음에 나오는 비유 중,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본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성경 전체로 따져도 오늘 본문의 비유가 해석하기 가장 난해한 비유라고 말합니다. 오늘 나는 이 본문의 비유를 멋들어지게 해석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어려운 비유일수록 단순하게보는 것이 바른 해석의 지름길입니다. 괜히 참신하게 해석하려고 하다가 본질을 놓치거나 알레고리(풍유적) 해석으로 끝나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이 비유의 의도를 찾아봅시다.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그 부자에게는 청지기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청지기는 오늘날로 따지면 금융 자산 관리사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이 자산 관리사는 부자 주인 집에서 계약을 맺고, 상당한 권한을 행세하면서 재무관리를 했던 것으로 봐 집니다그런데 어느 날 그 주인에게 제법 그럴 듯한 제보가 들어옵니다. 그것은 자신의 자산관리사가 주인의 돈을 잘 관리하지 못하고, 낭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그것은 한 두 번의 실수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자산 관리사의 품행이 바르지 못하고, 꼼수를 썼거나 사기행각을 벌렸거나 하는 식으로 주인의 자산에 손해를 끼친 것으로 봐 집니다그래서 주인은 그 자산 관리사를 불러, 2절에 보면 네 보던 일을 셈하라라고 명령합니다. 보던 일을 마무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인수인계 할 준비를 하라는 말씀이지요. 말하자면 해고 통지를 받은 것입니다.

 

    해고 통지를 받은 부자의 자산 관리사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이 직업을 잃고 나면 뭘할 수 있을까? 땅 파는 농사꾼이 될까? 아냐 땅을 파려면 힘이 있어야 되는데, 난 그럴 만한 힘도 없잖아? 그럼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homeless라도 될까? 아냐 그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지.”(3). 그러다가 한 가지 묘책이 떠 올랐습니다. “그래 맞아 내가 주인의 마지막 장부를 정리하고 인수 인계 하기 전에, 채무자들에게 인심을 베풀어서 완전히 직업을 잃고 난 후에, 그들이 자신에게 은혜 받은 만큼 자신을 환대해 주도록 만들자.”라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많은 채무자들을한 데 불러 모았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 비유 이야기에는 두 채무자의 예만 들고 있습니다한 채무자에게는 기름 백 말을 오십 말로 깎아 줍니다. 그런데 빚 문서에 50이라고 쓰도록 합니다.(6). 또 다른채무자에게는 밀 백석을 80석으로 깎아서, 빚 문서에 쓰라고 합니다.(7). 이 불의한 청지기는 빚 문서에 자신이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 본인이 직접 고쳐 적게 함으로써, 공문서 위조에 공범으로 끌어들이게 합니다이런 주도 면밀함을 통해서, 그는 추후에 직장을 잃은 후에, 자신에게 은혜를 입은 채무자들이 자신을 후하게 대접해 주어야 하는 당위성을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이 불의한 자산 관리사는어떤 배짱으로 저렇게 주인의 빚 문서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을까? 저렇게 하고도 이미 화난 상태의 주인의화를 더 돋구어서, 어쩌려고 저렇게 할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그런데 8절의 주인의 반응은 오늘날 성경 독자들에게 반전입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대게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도대체 뭐지?”라고 질문하게 됩니다.

 

    주인이 자산 관리사를 해고통지 할 때의 이유가, 주인의 돈을 맘대로 굴리다가 손해를 끼쳐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산 관리사가 해고 통지를 받고는, 장부인수 인계가 끝나기 전에, 주인의 권위를 사칭해서 빚 문서를 위조하고, 주인의 돈을 원래의 돈보다 더 못한 금액으로 돌려받게 했는데도, 그것이 지혜롭다며 칭찬했다는 말에, 오늘날 독자들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는 이 대목을 이해하기 위해서, 적어도 10명 이상의 신학자들의 의견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이 대목에 대한 해석도 다 제 각각이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청지기가 자기가 받을 커미션에 해당되는 퍼센트만 공제하고 빚을 탕감했기 때문에, 결국 주인에게는 원금이 상환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했고, 또 어떤 학자는 높은 이자율중 일부를 공제해 준 것이었기 때문에, 주인에게 큰 손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었지만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심하면서 이 대목을 묵상한 개인적인 결론은 이것입니다.

 

    주인은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긴 했지만채무자들로부터 좋은 덕망과 평판을 얻었기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이득을 봤다고 계산한것입니다. 요즘 기업들을 보십시오.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위해서, 광고 홍보비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습니다. 2 주전에 풋볼리그 챔피언 결정전 수퍼볼 경기가 있었는데, 그 때 TV 광고비가 비싸기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30초짜리 단발로 나가는 광고료가 500만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세계 굴지의 기업들마다 이 비싼 광고료를 한 편이 아니라, 3-4편씩 광고를 내면서, 2000만불 씩이나 되는 돈을 단 2분만에 소비해 버렸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대한민국 기업도 몇몇 포함됩니다. 이 돈이면 제 3세계 선교사 1000명을 1년 동안 파송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런데 기업들이 그렇게 낭비처럼 보이는 돈을 왜 쏟아 부을까요? 그래도 남는 장사이기 때문입니다미국에 한 시장조사기관이 수퍼볼 광고를 본 시청자 37,440명을 상대로 조사를해 봤더니, 광고를 보기 전보다 보고 난 후에 구매 의사가 6%가 더올랐다는 것입니다. 기업들이 비싼 광고료를 지불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광고료를 쓰면, 평판이 올라가고, 평판은 곧 소비자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결국 광고료를 쓰면, 그것 보다 훨씬 많은 금전적 이득이 돌아온다는 이치입니다.

 

    오늘 본문의 부자 주인은 오늘날로 따지면, 대기업 CEO와 같은 대단한 상업술과 기업 이미지전략에 머리 회전이 빠른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돈을 좀 잃는 것 같이 보이지만, 곧 그것이 좋은 평판으로 알려지고,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더 큰 돈줄을 가져다 줄 고객들을 몰고 오는 전략이라고 판단한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주인은 자기에게 그리 손해 볼 것이 없을 정도의 지혜를 발휘한 자산 관리사의 일 처리가, 자기뿐만 아니라 그 청지기 본인에게도 제법 유익이 되도록 했기 때문에 더 감탄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돈이 아닌 주인의 돈을 가지고, 인심을 쓰면서 자신의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자기편의 사람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인은 잔꾀에 능한 자신의 청지기의 일 처리 방식을 보고, 그 과정이 비록 옳지 못하더라도그 결과가 제법 이득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불법이나 비 도덕적인 일이라도 가능하며, 그런 옳지 못한 방법들이 성공하기만 하면 그런 과정은 다 용서해 줄 수 있다고 믿는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대변해 줍니다.

 

    이 비유의 스토리를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따르는 무리들에게 말씀하시면서, 8절 하반절에서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새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

 

    드디어 예수님이 불의한 청지기비유를 말씀하신 의도를내 비치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자녀들, 불신자들도 저렇게 상거래를 하는 데는, 열정적이면서, 독창적이고, 지혜로운 방안들을 내놓으면서까지 열심인데, 도대체 빛의 자녀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인 너희들은왜 그리도 슬기로운 구석이 없느냐?라고 반문하고 계신 것 입니다. 예수님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스토리텔링 하신 목적은 비교를 통한 신자들의 각성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예수님의 의도를 오해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단 한번도 이 비유에서주인이나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행동 자체가 옳다고 추켜 세우거나그들이 불법이나 편법을 자행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데 마음을 같이 하는 세상적인 상거래 방식이나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저급한 세상 사람들을 편들지도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의도는, 세상나라의 열심을 비유로 들면서 하나님 나라의 열심은 왜 도대체 세상 나라보다 못해야 하는가?라는 도전을 던지고 싶으신 것입니다.

 

    나는 기독교 신자들이 돈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보다 소극적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왜냐하면 신약성경 여러 군데에서 마치 돈을 많이 가지는 것이 죄악인 것처럼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잘 못 해석하거나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19:24, 10:25, 18:25)라는 말씀이라든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6:10)라든지, 오늘 본문 다음 구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14)이라는 말씀을 대하면 마치 돈에 신경 쓰는 나도 바리새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뭔가 신자는 돈에 초월해야되고, 청빈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요즘 청빈론이니 청부론이니 하는 이론들을 서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두 개중 어느 것 하나도지지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다음 단락만 보더라도, 거지 나사로와 부자가 나오는데, 나사로는 천국에 가 있고,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 중에 있는 모습으로 묘사합니다.그래서 마치 신약성경이 부자를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의 대명사인 것처럼, 가르치는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은 부자 자체가 구원받지 못할 죄라고 규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돈을 사랑하게 되면, 믿음을 저버리고 죄악에 거할 가능성이 많아진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나는 기독교 신자도 부자가 많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신실한 믿음을 가진 부자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그 가진 재물이 곧 사람을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예수님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9)고 명령하십니다. 이 대목도 해석이 어려운 구절입니다. ‘불의의 재물에 대한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돈은 다 불의하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옳지 않은 방법으로 생긴 돈은 다 친구를 사귀는데 써야한다는 뜻으로 말씀하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기독교 신자도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도 상관없다는 것일까요그래서 그렇게 해서 들어온 수입은 다 남을 위해서 쓰면, 면죄부가 주어진다는 뜻일까요?

 

    나는 이 불의의 재물돈의 잠재적 속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헬라어 원어 성경에 보면, “불의의 재물맘몬’(μαμων)이라고 표기합니다. KJV에는 “the mammon of unrighteousness”라고 나옵니다. 맘몬은 중세시대까지 대체적으로, 타락한천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존 밀턴의 실낙원에 보면, 맘몬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타락한 천사 가운데 가장 치사한 근성을 가진 자이 맘몬의 관심사는 금은보화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지상에 와서, 늘 맘몬은 땅만 보면서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땅 바닥에 떨어진 금은보화를 줍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심지어 인류에게 금광 채굴하는 방법을 맘몬이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성경이 말씀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냥 참고 사항으로 여기시면 좋겠습니다.

 

    ‘돈의 잠재적 속성이라고 할 때, 돈은 중립적이지만 돈이 사람의 죄성과 결부될 때, 어두운 양상으로 나타난다라는 것입니다. 돈은 사람의 손에 쥐어질 때까지, 많은 경우 선한 쪽보다 불의한 쪽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돈이 그 주인의 손에 들어오기 까지, 수많은 노동착취가 일어납니다. 돈이 그 주인의 손에 들어오기 까지 교묘한 탈세도 일어나고, 편법이 난무하고온갖 손해보지 않으려는 욕심과 탐욕이 거짓말 또는 속임수로 나타납니다. 때로는 돈이그 주인의 손에 쥐어지기까지 온갖 아첨의 말이 필요하기도 하고, 원치 않는 타협을 하기도 합니다이것이 돈이 가진 부정적인 잠재적 속성입니다.

 

    사실 돈은 인간 마음 밑바닥의 죄성을 스멀스멀 끄집어 내는 자석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LA에 어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대형교회 목사님이 자신이 교회로부터 받는 한달 사례비가 얼마라고 신문 기자에게 공개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공개했다는 그 사례비가 대형교회 목사님의 사례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적은 액수였습니다. 문제는 이 사실이 신문에 알려지고 난 다음에, 온갖 옹호성 댓글과 비방성 댓글이 양분화 되어서나타났습니다. 심지어 한국교계, 미국한인교계 할 것 없이 바른 소리내기 좋아하는 목사, 교수, 평신도 여기 저기서 비평글을 내고옹호성 글을 내고 시끄럽습니다. 저는 그 해당 목사님을 개인적으로 모릅니다.그리고 어떤 평가도 할 만큼 정확한 자료도 없을 뿐더러, 제가 그럴만한 입장이 되지 않습니다.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저는 이른 현상이 왜 생기는 지인간론적으로 한번 짚어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돈의 잠재적 속성이 인간 저변의 어두운 마음을 부추기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사실 우리의 마음이 돈의 많고 적음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마음의 상태라면, 누가 자신의 수입이 얼마라고 말한들 그게 무슨 가십거리가 되며, 그게 어떻게 신문에 기사거리가될 수 있습니까? 이런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갈라놓고, 서로 내가 맞니니가 맞니 하면서 대립하게 하는 이 현상 자체가 이미, 돈의 부정적인 잠재적 속성이 인간의 맘속을 헤 짚어놓고 있다는 증거이며, 인간의 마음은 돈의 힘에 항상 딸려 다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런 돈의 잠재적 속성을 올바르게 흐르게 하는 행동이 하나 있는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친구를 사귀라는 말로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의 본의도는, 나쁘게 해서 번 돈으로는 자기를 위해서 쓰지 말고, 친구를 사귀는 일에 쓰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진짜 의도는, 돈이 가진 잠재적 속성이 선하게 나타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그 돈의 속성이 사람을 살리는 일에 또한 친구를 만드는 일에 흘러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가장 멋있을 때가 돈을 쓸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쓸 때, 그 돈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10:8,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그리스도인의 물질관에는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의가 드러납니다자신의 의가 드러나는 징조는 대게 이런 것입니다. 섭섭함입니다. 내가 교회에 이렇게 재정적으로 헌신했는데, 내 말에 경청해주지 않다니내가 이렇게 저 사람을 구제로 도와주었는데, 나를 무시하다니이런 마음이 생길 때 여러분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이웃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는 개척한지 얼마 안 돼서 교인수도 적고재정적으로 참 열악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참 힘겹게 목회를 하시는데어느 날, 어떤 장로님 부부가 이사를 왔다며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장로님 부부가 헌금을 하시는데, 교회 재정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많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그 장로님께도참 감사한 마음이 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장로님이 목사님께 목회 부탁사항이 많이 지더랍니다처음에는 예배시간에 복음송 보다는 찬송가를 많이 부르면 좋겠습니다. 뭐 이런 아이디어를 많이 내 놓으시더랍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자고 하면서 웬만하면 그 장로님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했답니다그런데 그게 점점 더 수위가 높아지더라는 것입니다. 나 중에는 목사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참견하고, 섭섭해 하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처음에는 장로님 가정이 등록해서 너무너무 좋았는데, 나중에는 너무너무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더라는 것입니다결국 얼마 전에 그 장로님 부부는 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이 일로 그 목사님이 너무 힘들어 해서, 나는 그 목사님께 점심 대접을 하면서 위로해 드렸습니다그런데 그 목사님이 제게 묻습니다. “김목사님은 헌금 많이 하면서자기 목소리 내는 신자가 좋겠소? 아니면 헌금은 별로 많이 못하지만 자기 목소리 안내는 신자가 좋겠소?”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헌금도 많이내고 목소리도 안내는 신자가 좋습니다.” 물론 재밌으라고 한 말이긴 하지만, 지나고 나서 제가 한 말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굉장히 의미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늘 고백하길, “물질의 주인도 하나님이시며, 교회의 주인도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회에 기여하는 공로가 커지면 커질수록 혹 자신이 교회의 주인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자신을 늘 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재물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주인 노릇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3).

 

    이 결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의도는 뭘까요?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재물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구인 재물을 충성되이 잘 사용하라는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재물이 지극히 작은 것”(10)이라고 말씀하면서,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11)라고 반문하십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극히 작은 것이 바로, 돈이라는 것입니다. 이 돈이 선하게 흘러가게 하고, 영혼을 살리고, 연약한 지체를 돌보는 일에 사용할 때, 그것은 자기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10)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아무리 선한 일에 사용했다 하더라도, 교만하지 말고그것은 단지 하나님이 나에게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주신, 조그마한 선물임을 알고, 베풀고 나누어 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21/2016 7:23: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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