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00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출 4:18-23
18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19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히 3:1-6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시편 100편은 짧지만 그 안에 찬양의 열정이 가득 차 있다. 시인은 회중을 향해 일곱 가지 권면을 쏟아 낸다.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너희는 알지어다, 노래하라, 그의 문에 들어가라,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에 우리 몸의 모든 기관과 우리 마음의 모든 결을 동원하라는 권면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한가운데 놓인 한 단어다. 너희는 알지어다. 히브리어에서 안다는 말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가리킨다.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라는 말은 그분을 맛보고 경험하라는 말에 가깝다. 그렇게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진짜 찬양이 흘러나온다. 의무로 부르는 노래와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는 같은 가사를 가지고 있어도 그 무게가 다르다. 시인이 말한 일곱 가지 행위는 결국 한 가지를 향한다.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 존재 전체로 인정하는 일이다.
시인은 그 찬양의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하나는 그분이 하신 일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다른 하나는 그분의 성품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우리가 그분께 드리는 경배는 막연한 종교적 정서가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분과 그분의 한결같은 성품에 대한 정직한 반응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이 반응을 가능하게 하는 한 가지 증거가 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갈망이다. 우리는 불의가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며 때로 우리 자신이 그 불의에 일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정의를 갈망하고, 부정한 가운데서도 정결을 사모하며, 추함 한복판에서도 아름다움을 그리워한다. 어떻게 이런 모순된 갈망이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는가. 우리가 본래 그 모든 것의 근원이신 분에게서 지어졌기 때문이다. 진정 인격이 출중한 사람을 만났을 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듯, 정의와 선함의 한 자락을 보았을 때 마음 깊은 곳이 흔들리듯, 우리는 그 갈망의 끝에 계신 분을 마주할 때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게 된다.
히브리서는 이 갈망의 끝에 계신 분을 한 인격으로 가리킨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모세는 종으로서 하나님의 집에 신실했으나,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그 집을 맡으셨다.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다시 애굽으로 향한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그 지팡이가 그의 사명의 표지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안에 있는 갈망은 우리 능력의 증거가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분의 흔적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새겨 놓으신 그 흔적이 우리를 그분께로 자꾸 끌어당긴다. 그러므로 예배는 단지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가장 정직한 자기 표현이다. 우리가 그분을 높일 때 우리는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찾게 되고, 그 자리에서 비로소 평안을 얻는다. 시편 기자가 그분의 문에 감사함으로 들어가며 그의 궁정에 찬송함으로 들어가라고 권면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곳이 우리가 본래 속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우리는 그분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간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 안의 갈망이 어디서 왔는지 잊지 않게 하소서. 정의와 선함과 아름다움을 향한 작은 떨림이 결국 주님을 가리키는 표지임을 깨닫게 하시고, 의무로서가 아니라 존재 전체의 정직한 반응으로 주님을 예배하게 하소서. 그분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고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른다는 그 약속에 오늘도 닻을 내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