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6월 7일-성령강림절 후 둘째 주일, 호 5:15-6:6, 시 50:7-15, 롬 4:13-25, 마 9:9-13, 18-26
호 5:15-6:6
5: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시 50:7-15
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1)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2)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롬 4:13-25
13  아브라함이나 그 2)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2)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 바 ㄷ)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ㄹ)네 2)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마 9:9-13, 18-26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1)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1)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ㄱ)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언가를 들고 간다. 찬양을 들고 가고, 눈물을 들고 가며, 새벽기도와 봉사와 헌금을 들고 간다. 때로는 회개를 들고 간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이 고백은 진심이고,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묘한 패턴이 있다. 삶이 평온할 때는 하나님이 그다지 급하지 않다가, 일이 틀어지기 시작하면 그제야 무릎을 꿇는다. 호세아가 기록한 이스라엘의 고백도 그러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가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얼핏 보면 흠 잡을 데 없는 귀환 선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반응은 충격적이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고백의 내용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고백의 구조가 문제였다. 회개의 공식만 읊으면 회복을 내어주셔야 한다는 청구서, 주권자 하나님을 자판기로 만드는 그 미묘한 거래가 거기 깔려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신 인애는 그런 계산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효율을 따지지 않고 몸이 먼저 움직이듯, 상황이 좋든 나쁘든 그분을 사랑하기에 그냥 머무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신 인애였다.

마태복음 9장은 이 인애가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보여 준다. 그런데 그 답은 우리가 예상한 자리에 있지 않다. 예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부르셨고, 마태는 일어나 따라갔다. 본문은 마태의 단 한 마디도 기록하지 않는다. 조건도 묻지 않았고, 자격도 내세우지 않았으며, 달라지겠다는 다짐도 없었다. 그냥 일어나 따라갔다. 반면 같은 날 바리새인들은 따져 물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이들을 단순한 악인으로 읽으면 안 된다. 그들은 율법을 목숨처럼 지킨 경건한 자들이었고, 오늘 우리 교회 안에 있었다면 모두가 존경했을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경건함 안에 치명적인 것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들고 갈 것이 너무 많았다. 율법 준수, 금식의 실적, 죄인들을 멀리한다는 거룩의 증거. 그 자본이 쌓일수록 그들은 자신이 의롭다는 확신과 함께 경계선을 만들었다. 의인과 죄인, 깨끗한 자와 부정한 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호세아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스스로 건강하다고 확신하는 자는 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확신 자체가 은혜를 막는 벽이 된다.

본문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 방금 죽은 소녀, 그리고 백 세가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았던 아브라함이다. 셋 다 인간의 가능성이 완전히 소진된 자리에 서 있다. 혈루증 여인은 모든 방법을 시도한 끝에 뒤에서 손을 뻗었고, 그 손이 간신히 예수의 옷자락에 닿았다. 그러나 더 깊은 장면은 죽은 소녀의 집에서 일어난다. 그 소녀는 손을 뻗을 수조차 없었다.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무리를 모두 내보내신 후, 홀로 그 방에 들어가셔서 차갑고 굳어진 그 손을 먼저 잡으셨다. 이 장면이 호세아의 탄식과 복음이 갈라지는 자리다. 이스라엘은 우리가 돌아가면 주께서 싸매어 주신다고 말했다. 인간이 먼저 움직이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구조다. 그러나 복음은 다르다. 죽은 소녀는 돌아갈 수 없었고, 우리도 종종 그러하다. 그런데 예수께서 먼저 건너오셔서 우리의 죽은 손을 잡아 주신다. 종교는 네가 먼저 돌아오면 받아주겠다고 말하고, 복음은 네가 돌아올 힘조차 없는 그 자리로 내가 먼저 건너가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십자가다. 아브라함은 자기 몸이 죽은 것과 같음을 외면하지 않고 정직하게 직시한 자리에서,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신뢰했다. 그 자리에서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손이 뻗어 있다. 빈손으로 그 손을 맞잡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제사보다 원하시는 인애다.

오늘의 기도
주님, 들고 갈 것을 자꾸 만들어내려 했던 저의 미묘한 거래를 용서하소서. 돌아갈 힘조차 없는 자리에 먼저 건너오셔서 죽은 손을 잡아 주신 그 사랑을 깊이 신뢰하게 하시고, 빈손으로 그 손을 맞잡는 일이 오늘 저의 가장 큰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멘.
6/7/2026 8:50: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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