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6월 6일-시 50:7-15, 출 34:1-9, 마 9:27-34 [주말 묵상]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
시 50:7-15
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1)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2)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출 34:1-9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2  아침까지 준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 산 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3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아무도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4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니
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8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9  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마 9:27-34
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깨진 그릇을 들고 누군가 앞에 설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수치심을 느낍니다. 금이 간 자리를 감추고 싶고, 차라리 새것을 사서 바꾸고 싶습니다. 모세도 그랬을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춤추는 백성을 보고 분노하여 돌판 둘을 깨뜨린 후, 그가 마주한 것은 산산조각 난 돌판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언약 자체가 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뜻밖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깨뜨린 장본인에게 다시 돌판을 깎아 오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깨진 것 앞에서 등을 돌리시는 분이 아니라, 깨진 것을 들고 다시 올라오라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시내 산에 다시 올라간 모세 앞으로 하나님이 지나가시며 당신의 이름을 선포하십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가장 직접적으로 정의하신 장면입니다. 금송아지 사건 직후, 백성의 배반이 가장 생생한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은 심판이 아니라 자비와 인자로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물론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리라"는 엄중한 경고도 함께하십니다. 그러나 그 경고조차 삼사 대까지인 반면, 인자는 천 대까지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심판보다 은혜가, 진노보다 사랑이 압도적으로 크신 분임을 스스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우리와 동행하옵소서"라고 간청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목이 뻣뻣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가 달라는 이 대담한 기도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았기에 가능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편 50편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소유주이신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풍성한 제물이 필요해서 예배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단 하나,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감사, 그리고 곤경에 처했을 때 당신을 의지하고 부르는 신뢰 — 이것이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예배입니다. 형식은 풍성하되 마음은 떠나 있는 예배, 제단 위의 제물은 넘치되 삶은 부패해 있는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역겨운 위선에 불과합니다.

마태복음의 두 맹인은 바로 이 진심의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보았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외침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풍성한 제물도, 화려한 언어도 필요 없었습니다. "주여 그러하오이다"라는 한마디, 그 진심의 신뢰가 전부였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그 순간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똑같은 장면을 보고도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합니다. 눈이 멀쩡히 열려 있었지만 정작 하나님의 다스림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형식과 율법에는 정통했으나 마음은 닫혀 있었던 그들이야말로, 시편이 경고하는 "하나님을 잊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번 주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돌아봅니다. 우리의 예배가, 기도가, 묵상이 혹시 마음 없는 형식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제단 위의 정성만큼 올바른 길을 걷는 정성을 쏟고 있는지. 깨진 돌판을 다시 깎아 올라오라 하시고, 눈 먼 자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며, 풍성한 제물 대신 진실한 감사 하나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이 약속을 붙잡고, 깨진 것을 감추지 말고 그분 앞에 가져가십시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 다시 새겨 주실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 깨진 돌판을 다시 깎아 오라 하신 은혜 앞에 엎드립니다. 형식은 풍성하나 마음은 떠나 있던 저희의 예배를 용서하소서. 제물이 아니라 진실한 감사를, 율법의 이행이 아니라 마음의 신뢰를 원하시는 주님 앞에 빈손이지만 진심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환난 날에 주님을 부르는 담대함을 허락하시고, 맹인의 눈이 열리듯 우리의 마음의 눈도 열어 주셔서 주님의 다스림을 보게 하소서. 예배와 삶이 하나 되는 거룩한 걸음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6/2026 5:52: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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