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50:7-15
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1)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2)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애 1:7-11
7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8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9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10 대적이 손을 펴서 그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들을 막아 주의 성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신 그 성소에 그들이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11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이으려고 보물로 먹을 것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벧후 2:17-22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ㄱ)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시편 50편은 의외의 음성으로 시작한다.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놀랍게도 그 첫마디는 제물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제물에 대한 무관심에 가깝다. 나는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임이라. 우리는 종종 신앙을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 일로 이해한다. 더 많은 헌신, 더 큰 헌금, 더 정교한 예배. 그런데 시편은 그 모든 것이 본래 그분의 것이었음을 일깨운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드리면서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쓴 것처럼 여기는 우리의 자세를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말씀이다. 그리고 곧이어 하나님은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신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그러면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가진 무엇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특히 환난의 날에 그분을 부르는 그 한 마디 부르짖음, 그것이 그분께는 가장 귀한 예배다.
이 사실을 깊이 안 사람은 환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예레미야애가는 무너진 예루살렘이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정직하게 토해 내는 노래다.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의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한다는 고백, 더러운 것이 옷깃에 묻어 있고 놀랍도록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다는 탄식,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한 마디 기도.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자신의 비천함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그분 앞에 내어놓는 이 정직함이 진짜 신앙의 모습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자신의 무너진 모습을 그분께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신앙 생활을 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이런 마음 상태에 빠질 수 있는가 하는 자기 검열이 우리의 입을 다물게 만든다. 그러나 시편 50편의 하나님은 환난 날에 부르라고 명하신다. 우리의 모범적인 상태가 아니라 무너진 상태에서 드리는 부르짖음이야말로 그분께 영광이 된다는 것이다.
베드로후서가 경고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장 큰 문제도 바로 이 정직함의 부재였다. 그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라고 베드로는 말한다. 겉으로는 뭔가 있어 보이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약속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멸망의 종이었다. 영적 여정에서 우리를 가장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외부의 큰 시련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교묘히 자극하여 분별력을 흐리게 만드는 가짜 메시지다. 그 메시지의 공통점은 환난을 부정하고, 부르짖음을 부끄러워하게 만들며, 화려한 외관 뒤에 자신의 진짜 상태를 감추도록 부추긴다는 것이다. 진짜 신앙은 그 반대다. 자신의 비천함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환난 날에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분 앞에 드리는 일이다.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지 않으려면, 돼지가 씻고 다시 진창에 뒹굴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함이 필요하다. 그 정직함이 우리를 진짜 자유로 이끈다.
오늘의 기도
주님, 가진 것을 드리는 척하면서 정작 저 자신을 드리지 않으려 했던 미묘한 위선을 용서하소서. 환난 날에 부끄러움 없이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 화려한 외관 뒤에 무너진 마음을 감추지 않게 하소서. 비천한 자를 돌보시는 그 손길에 오늘도 저를 맡깁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