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6월 2일-시 29, 욥 39:13-25, 고전 12:4-13
시 29
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1)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6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7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9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2)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욥 39:13-25
13  타조는 즐거이 날개를 치나 학의 깃털과 날개 같겠느냐
14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흙에서 더워지게 하고
15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16  그 새끼에게 모질게 대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고생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17  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라
18  그러나 그것이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우습게 여기느니라
19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20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21  그것이 골짜기에서 발굽질하고 힘 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22  두려움을 모르고 겁내지 아니하며 칼을 대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23  그의 머리 위에서는 화살통과 빛나는 창과 투창이 번쩍이며
24  땅을 삼킬 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에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25  나팔 소리가 날 때마다 힝힝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지휘관들의 호령과 외치는 소리를 듣느니라


고전 12:4-13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1)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욥기 39장은 동물원의 한 장면처럼 다양한 생명을 차례로 보여 준다. 알을 땅에 버려두는 어리석은 듯한 타조가 있고, 한번 뛰기 시작하면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우습게 여길 만큼 빠른 그 타조가 있다. 골짜기에서 발굽질하며 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팔 소리를 향해 달려가는 군마가 있다. 한 생명은 지혜가 부족하나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고, 한 생명은 용맹하나 그 용맹이 또 다른 자리에서 빛난다. 하나님은 욥에게 이 다양한 피조물을 보여 주시며 한 가지 사실을 가르치신다. 모든 생명은 같은 손에서 나왔지만, 각자 다른 자리에서 다른 방식으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우월하거나 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조가 군마처럼 되지 못해서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는 없고, 군마가 학의 깃털을 부러워해야 할 이유도 없다.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서 발휘되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12장의 권면은 정확히 같은 결을 가진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다.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은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은사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것이었다. 더 화려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자신을 더 영적이라고 자부하고, 덜 가시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은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기는 일이 교회 안에서 미묘한 위계를 만들고 있었다. 바울은 그 모든 위계를 단번에 무너뜨린다. 모든 은사는 같은 성령에게서 오고, 모든 은사는 동일한 목적, 곧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은사가 더 빛나 보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더 영적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가 그런 자리에 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 분별은 늘 새롭게 요구된다. 앞에서 가르치는 사람과 뒤에서 조용히 식탁을 차리는 사람, 큰 목소리로 기도하는 사람과 침묵으로 누군가의 손을 잡아 주는 사람, 모두가 같은 성령의 일하심 안에 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 자유를 준다. 첫째, 다른 사람의 은사를 부러워하지 않을 자유다. 내가 받지 못한 은사를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을 작게 여긴다. 그러나 같은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그 자리에서 그 은사를 주신 것뿐이다. 둘째, 자신의 은사를 자랑하지 않을 자유다. 내가 가진 은사가 누군가의 것보다 더 두드러져 보일 때 우리는 미묘하게 자신을 높이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 은사는 내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받은 선물이며, 그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주어졌다. 시편 기자는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라고 노래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은사 앞에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기보다 그 은사를 주신 성령께 돌아가는 시선을 가질 때,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은사 앞에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기보다 그것을 주신 분께 돌아가는 시선을 가질 때, 교회는 비로소 한 몸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는 그 고백이 비로소 우리의 일상이 된다.

오늘의 기도
주님, 다른 사람의 은사를 부러워하던 좁은 시선과 저의 작은 은사를 자랑하려던 미묘한 교만을 함께 내려놓게 하소서. 같은 성령께서 각자에게 다르게 일하심을 깊이 신뢰하게 하시고, 제게 주신 자리에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쓰임받게 하소서. 아멘.
6/2/2026 6:02: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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