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6월 1일-시 29, 욥 38:39-39:12, 고전 12:1-3
시 29
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1)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6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7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9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2)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욥 38:39-39:12
38:39  네가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욕을 채우겠느냐
40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숲에 앉아 숨어 기다리느니라
41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
39:1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2  그것이 몇 달 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3  그것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으니 그 괴로움이 지나가고
4  그 새끼는 강하여져서 빈 들에서 크다가 나간 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
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6  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
7  들나귀는 성읍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비웃나니 나귀 치는 사람이 지르는 소리는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8  초장 언덕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풀을 찾느니라
9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10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11  그것이 힘이 세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를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12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고전 12:1-3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다윗은 권능 있는 자들을 향해 외친다.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라.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여호와께 돌리라. 이 외침은 사실 그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었을 것이다. 다윗은 왕이었다. 백성은 그에게 영광과 경배에 가까운 존경을 바쳤고, 그 박수와 환호 속에서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착각하는 일은 왕에게 가장 쉬운 유혹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이 자신에게 돌리려는 영광을 의도적으로 사양하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로 옮겨 드린다. 이어지는 시편의 풍경은 그 결단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천둥 소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백향목을 꺾는 폭풍에서 그분의 능력을 보며, 광야를 진동시키는 바람에서 그분의 위엄을 떠올린다. 자연 현상 앞에서 그분의 광대하심을 진지하게 마주한 사람만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영광을 정직하게 사양할 줄 안다. 자신의 자리를 잊지 않는 비결은 그분의 자리를 자주 기억하는 일이다.

욥기 38장 후반부와 39장 초입은 같은 진실을 다른 각도에서 드러낸다. 하나님은 욥에게 묻는다. 네가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까마귀 새끼가 부르짖을 때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누가 들나귀의 매인 것을 풀어 자유롭게 하였느냐. 이 모든 질문이 가리키는 것은 한 가지다. 우리가 보지 않을 때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그분의 광대한 살림을 운영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사자의 굴에서, 까마귀의 둥지에서, 들나귀의 초장에서 그분은 끊임없이 일하신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의 아주 작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자신을 그 작은 자리보다 훨씬 크게 여기며 살아간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하고, 내 판단이 옳아야 하며, 내가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은 우리 안에 작은 왕좌를 만든다. 그 왕좌 위에 앉아 있는 동안 우리는 정작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의 정체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첫머리에서 이 모든 것의 마지막 한 조각을 보탠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예수를 주라고 부르는 그 한마디 안에는 동시에 내가 주가 아니라는 고백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고백은 우리의 결단이나 의지력으로 짜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일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그러므로 매일 아침 우리 자신의 왕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는 일은, 우리의 신앙 행위이자 동시에 성령의 선물이다. 다윗이 왕궁에서 그렇게 했고, 욥이 폭풍우 가운데서 그렇게 했으며, 우리도 일상의 한복판에서 같은 자리로 부름받는다. 이 무릎 꿇음은 패배가 아니라 자유다. 진짜 왕좌에 앉으신 분이 따로 계심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짊어지지 않아도 될 무게에서 풀려난다. 흔들리지 않는 평안은 자신이 모든 것을 다스리려는 자리에서 오지 않고, 자신이 다스림을 받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오늘의 기도
주님,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는 작은 왕좌에서 저를 내려오게 하소서. 영광과 능력을 제 자신에게 돌리려는 미묘한 유혹을 분별하게 하시고, 오직 주님께만 합당한 그 자리를 침범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를 주라 부르는 이 한마디 고백이 오늘 하루를 다스리게 하소서. 아멘.
6/1/2026 5:49: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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