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5월 16일-시 93, 왕하 2:13-15, 요 8:21-30 [주말 묵상] 보이지 않는 왕, 보이는 방식으로 오시다
시 93
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2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3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4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
5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


왕하 2:13-15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15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요 8:21-30
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22  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2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26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27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30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주말 묵상] 보이지 않는 왕, 보이는 방식으로 오시다
어린 시절,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아침의 기억이 있습니다. 밤새 창문을 두드리던 바람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아침에 문을 열면 거리에는 부러진 나뭇가지와 뒤엉킨 쓰레기가 널려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 부러진 가지 옆에서 새순이 돋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허의 자리는 오히려 더 푸른 풀밭으로 변하곤 했습니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세상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는 느낌, 어린 마음에도 그것은 묘한 경외감이었습니다. 시편 93편의 시인은 바로 그 경외감을 노래합니다. 큰 물이 소리를 높이고 바다의 파도가 미친 듯이 날뛰어도,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그 모든 것보다 크십니다. 폭풍이 할퀴고 간 자리에서 다시 생명이 돋아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다는 가장 조용하고도 강력한 증거입니다.

문제는 이 통치가 우리 눈에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너무나 크시고 그분의 걸음은 너무나 느리기에, 조급한 우리의 눈에는 포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끼고, 손을 떼신 것처럼 불안해하며, 결국 눈 질끈 감고 우리 방식대로 일을 처리합니다. 그것이 더 빠른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길이 화를 자초하는 길이었음을 깨닫고 뼈아프게 후회합니다. 이 후회를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해야, 보이지 않는 왕이 여전히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견고히 믿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주 구체적이고 보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통치를 드러내신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올라간 후 남겨진 것은 겉옷 한 벌이었습니다. 엘리사는 그 겉옷을 주워 요단강 물을 쳤고, 물이 갈라졌습니다. 하늘로 올라간 선지자의 능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낡은 겉옷 하나를 통해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화려한 왕관이나 압도적인 군대가 아니라, 때로는 겉옷 한 벌처럼 초라해 보이는 것을 통해 이 땅에 임합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야의 영이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고 고백한 것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통치가 보이는 현실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목격한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진리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선포하십니다. "내가 곧 나임을 너희가 믿지 않으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 앞에서 들었던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 곧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그 이름을 나사렛 출신의 한 사람이 자기 입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당신은 누구냐"고 따져 물었지만, 그들의 눈은 아래에 속해 있었기에 위에서 오신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존재, 다른 신들처럼 이름 붙일 수조차 없는 그분이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육신 안에서, 우리가 발 딛고 선 바로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겉옷 한 벌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전하셨던 하나님이, 이번에는 나사렛 사람 예수라는 한 몸을 통해 자신의 왕권을 온전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덧붙이십니다. "너희는 인자가 높이 들려 올려질 때에야 내가 그인 줄을 알리라."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순간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왕이 가장 보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통치를 선언하시는 때입니다. 세상의 눈에 십자가는 패배와 수치의 상징이었지만, 그것은 큰 물 소리보다 크신 하나님이 죄와 죽음의 파도를 잠재우시는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엘리야의 겉옷이 요단강을 가른 것처럼, 십자가는 죄와 생명 사이를 갈라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번 주말, 하나님이 정말 다스리고 계신지 의심이 드는 순간이 있다면,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가장 초라하고 가장 처참해 보이는 그 자리에서 영원하신 왕은 가장 크게 다스리고 계셨습니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그 변함없는 통치 아래서, 오늘도 여러분의 삶 위에 새순이 돋아나고 있음을 믿으시길 소망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영원부터 다스리시며 큰 물의 파도보다 크신 하나님, 주님의 통치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조급하게 우리 방식을 앞세웠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엘리야의 겉옷 한 벌로 요단강을 가르셨고, 나사렛 사람 예수의 십자가로 죄와 죽음의 물결을 잠재우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금 우리 앞에 미친 듯이 날뛰는 삶의 파도가 있을지라도, 그 파도보다 크신 주님이 다스리고 계심을 믿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왕이 누구인지를 고백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5/16/2026 6:38: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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