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5월 9일-시 66:8-20, 창 8:13-19, 요 14:27-29 [주말 묵상] 무균실의 안락함인가, 전장의 평강인가
시 66:8-20
8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
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11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12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13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으리니
14  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15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 (셀라)
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17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19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20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창 8:13-19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17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요 14:27-29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방주의 문이 열렸습니다. 일 년 가까이 갇혀 있던 노아가 마주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푸른 풀밭과 맑은 시냇물이 펼쳐진 에덴의 풍경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홍수가 할퀴고 간 지면에는 거친 진흙과 썩은 나무뿌리가 뒤엉켜 있었을 것이고, 새 출발의 감격만큼이나 막막한 현실이 눈앞에 놓여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의 목적지를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무균 상태'로 상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를 깨끗한 무균실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릴 때부터 악하다"는 씁쓸한 현실을 확인하시면서도, 그 불완전한 가족을 다시 거친 땅으로 내보내셨습니다. 홍수 심판은 인류의 죄성을 박멸한 사건이 아니라, 죄가 득실거리는 현실 한복판에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혹독한 입문식이었습니다.

시편 66편의 시인 역시 이 역설을 온몸으로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 없는 온실에 가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허리에 무거운 짐을 지우시며, 사람들이 우리 머리 위를 짓밟고 지나가게까지 하십니다. 은을 단련하듯 불과 물을 통과하게 하시는 이 과정은 우리를 소멸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의 불순물을 걷어내어 가장 단단한 존재로 빚어내시려는 하나님의 정교한 작업입니다. 그렇기에 시인이 마침내 도달한 '풍부한 곳'은 고난이 사라진 장소가 아닙니다. 어떤 고난도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영적 면역력이 완성된 자리, 그곳이 풍부한 곳입니다. 이 단련의 과정을 통과한 시인은 비로소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습니다. "내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자기 안의 죄성을 직시하는 정직함이 오히려 기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노아가 진흙탕 위에서 가장 먼저 제단을 쌓았던 것처럼, 내면의 악함을 인정하고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 신실한 반복이 우리를 거룩함으로 이끕니다.

이 험난한 여정의 한복판에서 예수님은 기이한 선물을 남기십니다. 십자가라는 거대한 풍랑을 목전에 두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였습니다. 당시 로마가 군사력으로 억눌러 만든 '팍스 로마나'와는 본질이 전혀 다른 평강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위협이 제거되어야 비로소 느끼는 조건부 안심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샬롬은 위협 한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평강입니다. 주님은 덧붙이십니다.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떠나심이 끝이 아니라 다시 오심의 시작이요, 그 약속을 미리 말씀하신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이 평강은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아직 폭풍이 몰아치는 바로 그 순간에 먼저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적 무균 상태를 흉내 내며 세상과 담을 쌓는 삶이 아닙니다. 죄악이 판을 치고 세상의 통치자가 위협하는 전장 한복판에서, 주님이 주신 평강을 가슴에 품고 묵묵히 제단을 쌓아가는 삶입니다. 세균이 가득한 환경에서 면역력을 키워 건강을 유지하듯, 우리의 영적 생활도 죄 없는 환경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이기는 생명력을 날마다 키워가는 데 그 핵심이 있습니다. 시편의 시인이 고백했듯,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그 인자하심을 거두지도 않으십니다. 넘어져도 다시 제단 앞으로 나아가는 그 발걸음을 하나님은 한 번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번 주말,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걱정의 목록을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불과 물을 통과하게 하셨던 하나님이 우리를 결국 가장 풍성한 곳으로 이끌어내실 것입니다. 진흙탕 위에서도 제단을 쌓았던 노아처럼, 오늘 여러분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의 평강을 붙잡으시길 소망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 말씀이 오늘 여러분의 삶 위에 살아 있는 위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불과 물을 통과하게 하시고 끝내 풍부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죄 없는 환경을 찾아 헤매던 저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죄악이 가득한 세상 한복판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영적 면역력을 허락하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참된 평강으로 저희 마음을 채워 주소서. 고난의 짐이 무겁고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는 듯한 날에도, 저희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는 주님의 인자하심을 신뢰하게 하소서. 노아가 진흙탕 위에서 쌓았던 감사의 제단이 오늘 저희 삶의 고백이 되게 하시고, 근심과 두려움 대신 주님의 샬롬으로 이 하루를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5/9/2026 7:27: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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