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31:1-5, 15-16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4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렘 26:20-24
20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21 여호야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이 그의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 간지라
22 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23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
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 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요 8:48-59
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4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주말 묵상] 갇힌 시간의 공포, 열린 영원의 신비
새벽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순간, 우리는 이미 시간과의 경주를 시작합니다. 지나간 어제는 손에 잡히지 않고, 내일은 안개 너머에 숨어 있으며, 오늘은 숨 돌릴 틈 없이 흘러갑니다. 한 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인간은 늘 후회와 불안 사이를 오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쌓고, 기록하고, 붙잡으려 애쓰지만, 그 모든 수고조차 결국 낡아가는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합니다. 욥이 탄식했듯 "여인에게서 태어난 인생은 그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유한함의 무게가 짓누르는 세상 한복판에서 예수님은 충격적인 선포를 던지십니다. 유대인들이 "당신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고 따져 물을 때, 주님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내가 있었다(I was)"가 아닌 "내가 있다(I am)"라는 현재형 선언은, 주님이 시간의 흐름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시간 자체를 창조하고 초월하신 영원한 현재 그 자체임을 드러내십니다. 유한한 시간 안에 갇힌 이들의 귀에 이 말씀은 미친 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들은 돌을 들어 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돌을 드는 손이야말로, 영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영원의 차원에 계신 그분이 유한한 육신을 입고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오신 사건, 그것이 성육신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이 제한된 몸을 취하셨기에, 주님은 우리가 발 딛고 선 바로 이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고, 흘러가는 오늘 속에서 영생을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이 약속은 육신의 소멸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활을 통해 죽음의 벽을 허무신 주님을 믿는 자에게 죽음은 더 이상 종착역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문이 된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선포하는 길은 때로 혹독한 현실의 저항에 부딪힙니다. 예레미야와 동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예언자 우리야는 왕의 칼날을 피해 애굽까지 도망쳤으나 끝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반면 예레미야는 아히감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한 사람은 실패했고 한 사람은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진리를 증언한 동일한 무게의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의 남은 시간이 길든 짧든, 나는 그 시간을 누구의 손에 맡기고 있는가?
시편의 시인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았습니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나의 미래가 우연이나 환경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신 진리의 하나님 손에 있음을 믿을 때, 비로소 세상이 비밀히 쳐놓은 그물에서 빠져나올 담력이 생깁니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고백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영원하신 분이 유한한 죽음의 순간에 이 시편을 기도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 속에서도 이 고백이 유효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번 주말, 끊임없이 우리를 옥죄는 시간의 계산을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품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 시간의 흐름에 갇혀 미래를 두려워하고 과거를 후회하며 살아온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셨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저희 곁에 계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희의 앞날이 주님의 손에 있음을 믿사오니, 세상의 위협과 비방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육신은 낡아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게 하시고,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기쁨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