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00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겔 34:17-23
1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
18 너희가 좋은 꼴을 먹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19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곧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서 심판하리라
21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를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
22 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벧전 5:1-5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놓여 있다. 이민자의 삶은 특히 그렇다. 집세와 보험료, 의료비와 학비가 숫자로 나를 평가하고, 관계마저 성과와 효율의 기준으로 재편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시편 100편은 이 불안한 자기증명의 질서를 단호하게 멈추어 세운다. 우리는 스스로를 만들어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재이며, 그분의 것이라고 말한다. 이 선언은 위로처럼 부드럽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의 기초를 뒤흔든다. 더 잘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양으로 불린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묻기 때문이다. 부활 신앙의 출발점은 삶을 잘 꾸려내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다시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양으로 불렸다는 선언이 곧바로 평온한 현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에스겔 34장은 하나님의 양 떼 안에서도 강한 자와 약한 자가 나뉘고, 서로를 밀어내며 살아가는 현실을 숨기지 않는다. 살진 양은 연약한 양을 밀쳐내고, 자신이 차지한 풀밭을 지키기 위해 더 큰 힘을 행사한다. 이것은 고대의 목축 이야기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현실이기도 하다. 교회 안에서도, 이민 사회 안에서도 우리는 쉽게 비교하고, 판단하고, 자기 몫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밀어낸다. 이때 하나님은 도덕적 훈계로만 개입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 질서 자체를 판단하겠다고 선언하시며, 친히 한 목자를 세워 양들을 돌보겠다고 말씀하신다. 부활은 무너진 현실을 외면하는 사건이 아니라, 경쟁과 상처가 겹겹이 쌓인 자리 한가운데로 하나님이 다시 들어오시는 사건이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약육강식의 들판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이 하나님의 통치는 베드로전서에서 공동체의 삶의 방식으로 구체화된다. 장로들에게 맡겨진 일은 지배하거나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본이 되어 돌보는 일이며, 공동체 전체에게 요청되는 태도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다. 이는 패배를 강요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삶의 주도권을 다시 내어 맡기는 결단이다. 고립된 개인으로 버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사회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관계로 부르신다. 부활 신앙은 혼자 강해지는 길이 아니라, 함께 약해질 수 있는 용기를 배우는 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양으로 부르실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밀어내는 삶에서 벗어나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로 이동하게 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가 스스로를 증명하며 살던 자리에서, 주님의 양으로 다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쟁과 비교 속에서 무뎌진 제 마음을 드러내 주시고, 주님의 통치 안으로 다시 옮겨 주옵소서. 낮아짐이 두려움이 아니라 생명의 길임을 믿게 하시고, 오늘의 삶 속에서 주님의 돌보심을 의지하며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