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4월 18일-시 116:1-4, 12-19, 사 25:6-9, 눅 14:12-14 [주말 묵상] 계산기를 버릴 때 시작되는 잔치
시 116:1-4, 12-19
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19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1)할렐루야


사 25:6-9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7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9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눅 14:12-14
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인생이 바닥을 알 수 없는 구덩이, 즉 '스올'의 고통에 빠졌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진실은 인간의 무력함입니다. 시편의 시인은 사망의 줄이 자신을 두르고 환난과 슬픔이 덮쳐올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의 귀가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평소에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죽음의 문턱을 통과해 본 사람만이 고백할 수 있는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니며, 오직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만이 절망의 결박을 푸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처절한 항복의 지점에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인격적 관계, 즉 '하시딤(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의 삶이 시작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한 '만민을 위한 연회'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하나님은 시온 산에서 모든 민족을 가리고 있던 죽음의 덮개를 벗기시고, 눈에서 눈물을 씻어내시며, 가장 좋은 기름진 음식과 맑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십니다. 이 잔치의 가장 놀라운 점은 잔치에 참여한 자들이 값을 치르거나 무언가를 보답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의 공포에 떨며 수치를 당하던 이들에게 거저 주어지는 이 잔치는, 우리가 기다려온 구원이 우리의 공로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호의(Grace)임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냉혹한 심판관이 아니라, 가장 값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관대한 호스트(Host)이십니다.

문제는 이 '받을 길 없는 은혜'를 입은 우리가 일상의 잔치에서는 여전히 '되갚음의 계산기'를 두드린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집에서 안식일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로 상석에 앉으려 눈치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목격하십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대접받을 가치가 있는지를 증명하고 싶어 하며, 상석에 앉음으로써 자신의 신분과 권위를 확인받으려 합니다. 하지만 자기를 높이려 애쓰는 삶은 결국 타인의 시선에 갇히는 감옥이 될 뿐입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진정으로 존경받을 사람은 스스로 상석을 찾는 자가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주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도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누군가를 초대할 때, 나중에 나를 다시 초대해 줄 수 있는 부유한 이웃이나 친척을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접대는 상호 호혜라는 명분 아래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너도 이만큼 갚으라'는 거래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는 진정한 은혜가 흐를 틈이 없습니다. 대신 주님은 갚을 능력이 전혀 없는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을 청하라고 권하십니다. 갚을 것이 없는 자들을 초대할 때, 그 잔치는 비로소 거래가 아닌 '은혜'가 되며, 이 땅의 식탁은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연회를 닮아갑니다.

하나님께 입은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시인의 결론은 명쾌합니다. 그것은 '구원의 잔을 들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재물이나 대단한 업적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받은 구원을 기뻐하며 만민 앞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언하는 삶, 즉 예배와 서원을 지키는 삶을 보답으로 여기십니다. 성도의 죽음조차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이야말로, 조건 없이 베푸신 하늘의 연회에 대한 가장 합당한 응답입니다. 우리 삶의 보답은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의인들이 부활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생명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이제 '계산기'를 버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내게 줄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친절을 베풀고, 나를 높여줄 자리에만 머물려 하는 세속적 본능을 십자가 아래 못 박아야 합니다. 이사야가 노래한 그 영원한 잔치를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오늘 나의 식탁에 소외된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얼굴에서 눈물을 씻어주셨듯이, 우리도 누군가의 수치를 덮어주고 억눌린 자들의 결박을 푸는 작은 호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갚을 길 없는 사랑을 입은 자답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시작할 때 우리 일상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잔치 마당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절망의 구덩이에서 저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의 잔치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 세상의 인색한 계산법에 익숙해져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잊고 살았던 저희를 용서하소서.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앉으려 애쓰기보다 주님이 머무시는 낮은 자리를 사모하게 하시고, 되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사랑을 흘려보내는 넉넉한 마음을 주소서. 제게 주신 모든 은혜를 찬양과 감사의 고백으로 보답하게 하시며, 부활의 날에 주실 영원한 상급을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보시는 앞에서 진실하게 걷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18/2026 3:34: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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