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4월 11일-시 16, 아 8:6-7, 요 20:11-20 [주말 묵상] 이름을 부르는 사랑, 경계를 허무는 생명
시 16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1)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2)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아 8:6-7
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7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요 20:11-20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인생의 허무를 가장 뼈아프게 마주할 때는 정성껏 가꾸어 온 삶의 자리가 한순간에 '빈 무덤'처럼 느껴질 때입니다.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갈증과, 언젠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올(죽음)의 그림자로 사라져야 한다는 근원적인 공포는 우리를 늘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를 보호해 줄 더 단단한 바위와 더 넓은 구역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분투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무덤 밖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망연자실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절망의 끝에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 버티고 서 있다고 선포합니다. 아가서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홍수도 삼키지 못하고 온 재산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치열하고도 집요한 것입니다. 이 사랑은 단순히 감정적인 위로에 머물지 않고, 인류의 가장 견고한 종착역인 무덤의 돌문을 뚫고 나오는 실제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보다 더 경이로운 것은, 그분이 부활하시자마자 가장 먼저 하신 일이 한 여인의 이름을 부르러 가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죽음을 이긴 승리의 왕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이름 없는 여인의 눈물 맺힌 현장이었습니다.

무덤 밖의 마리아는 눈앞에 계신 주님을 보고도 그저 '동산지기'로만 생각했습니다. 우리 역시 일상의 분주함과 슬픔에 매몰되면, 곁에 계신 주님을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기능적인 존재로만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마리아야"라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시는 순간, 닫혀있던 그녀의 영적 세계가 폭발하듯 열렸습니다. 부활은 거창한 종교적 이론이 아니라, 나를 아시는 주님이 나의 고유한 이름을 부르시는 소리에 반응하는 인격적인 마주침입니다. 나를 추격해온 그 사랑의 음성을 듣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죽음의 지배 아래 있던 '목숨'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생명'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이 추격하는 사랑에 붙잡힌 사람에게는 비로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열립니다. 그동안 남들과 비교하며 작고 초라하다고 불평했던 나의 삶, 즉 '줄로 재어 준 나의 구역'이 실은 하나님께서 가장 정밀하게 설계하신 '아름다운 유산'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고백한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라는 찬송은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체가 나의 산업이자 소득이 되셨기에, 내가 서 있는 이 좁은 땅이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영토'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은 결핍의 공포를 자족의 기쁨으로 변모시킵니다.

부활의 주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두려움 때문에 문을 닫아걸고 숨어있던 제자들의 한복판으로 찾아오십니다. 유대인들이 무서워 떨던 그들에게 주님이 주신 첫 마디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위협적이고 문밖의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 곁에 계시다는 사실만으로 제자들의 두려움은 기쁨으로 전복됩니다. 주님은 상처 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심으로써, 우리가 겪는 고난의 흔적조차 부활의 영광 안에서는 승리의 증거가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이제 평강을 얻은 자들은 세상의 문을 열고 나갈 담력을 얻습니다.

결국 사순절과 부활절을 통과한 성도의 삶이란, 나를 죽음까지 추적해오신 그 강렬한 사랑에 완전히 투항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 죽음은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하는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이가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가 되시고, 그분이 직접 우리의 평생을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뒤쫓고 계십니다. 이번 주말, 세상의 계산기를 내려놓고 내 이름을 부르시는 그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주님 밖에는 복이 없다는 다윗의 고백이 당신의 심장을 고동치게 할 때, 당신의 평범한 일상은 이미 영원한 즐거움이 흐르는 천국의 지성소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나의 주인이시며 가장 귀한 유산이신 하나님, 죽음의 그늘 아래서 떨며 세상의 썩어질 것들로 방패를 삼으려 했던 저의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무덤 문을 여시고, 울고 있는 저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시는 부활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게 줄로 재어 주신 오늘의 삶이 결핍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벽한 선물임을 신뢰하게 하소서. 닫힌 문을 뚫고 찾아오시는 주님의 평강으로 제 불안을 덮어주시고, 제게 주신 이 아름다운 생명의 길을 기쁨으로 걷게 하소서. 이제는 주님만으로 충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11/2026 5:56: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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