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3월 28일-시 31:9-16, 애 3:55-66, 막 10:32-34 [주말 묵상] 무엇을 보며,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시 31:9-16
9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10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11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애 3:55-66
55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56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57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58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
59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60  그들이 내게 보복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61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비방하며 나를 모해하는 모든 것
62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들과 종일 나를 모해하는 것들을 들으셨나이다
63  그들이 앉으나 서나 나를 조롱하여 노래하는 것을 주목하여 보옵소서
64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사
65  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66  주께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사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하소서

막 10:32-34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앞서서 걸어가셨습니다. 그분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결연함과 비장함 때문이었을까요? 따르는 자들은 놀랐고 또 두려워했습니다. 주님은 벌써 세 번째나 자신이 당할 수치와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상세히 일러주셨지만, 정작 가장 가까이 있던 제자들의 시선은 딴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이 예고하신 '십자가의 잔'을 '영광의 축배'로 착각했고, 그분이 왕좌에 앉으실 때 차지할 좌우편 자리를 선점하려 애썼습니다. 죽음을 향해 묵묵히 걷는 스승의 발걸음 옆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출세 가도를 계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눈먼 상태는 여리고의 거지 바디매오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육신의 눈이 멀어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바디매오는, 정작 예수가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제자들은 '권력의 자리'를 구했지만, 바디매오는 '다시 보는 것'을 구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눈 뜬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소경이었고, 눈 먼 거지는 주님이 가시는 길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유익을 찾아 떠나지 않고, 기꺼이 예수의 뒤를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 또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시편의 시인은 사방이 두려움으로 에워싸이고 이웃들로부터 깨진 그릇처럼 잊힌 존재가 된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하며 주의 얼굴빛을 구합니다. 깊은 구덩이에 빠진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드는 자는, 세상이 주는 갈채가 아니라 하나님의 '환한 얼굴'이 가장 큰 복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반면 마음의 눈이 어두워진 사람은 하나님마저도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도구로 전락시키고 맙니다.

사순절의 막바지를 지나는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 더 높이, 더 빨리 오르기를 꿈꾸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뒷모습을 보며 엉뚱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야고보와 요한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본 사람은 더 낮은 곳으로, 더 느리게, 더 깊은 섬김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섬김의 절정이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내어주는 것이라 말씀하신 주님의 길은, 자기 증명이 아니라 자기 부인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처한 삶의 현장이 아무리 팍팍하고 억울한 일로 가득할지라도,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환경의 변화보다 '영적 시력'의 회복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향해 박수를 쳐도 주님이 얼굴을 돌리신다면 그것은 가장 비참한 실패입니다. 반대로 세상이 나를 깨진 그릇처럼 취급할지라도 주님의 얼굴빛이 나를 비추고 있다면 그곳이 곧 천국입니다. 바디매오처럼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부르짖으며 우리 내면의 허영과 탐욕의 비늘을 벗겨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눈을 뜨고 인생의 목적지를 주님의 궤적에 맞추는 '리셋'이 일어날 때, 우리의 일상은 비로소 의미를 찾게 됩니다.

부활의 영광은 고난의 잔을 함께 마시는 자들의 몫입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셨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이번 주말, 끊임없이 높아지려 하고 대접받으려 하는 우리 안의 사울과 같은 본성을 십자가 아래 못 박읍시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음을 정직하게 신뢰하며, 주님이 가신 그 낮아짐의 길을 묵묵히 뒤따라 봅시다. 마음의 눈이 열려 주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자에게는, 어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의 영원한 빛이신 주님, 주님의 뒤를 따르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영광과 자리를 탐했던 저희의 어두운 눈을 고쳐 주옵소서. 바디매오처럼 간절하게 주님의 긍휼을 구하오니, 저희의 마음눈을 밝히사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보게 하소서. 고통과 비방 속에서도 사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주의 얼굴빛만을 구했던 시인의 고백이 저희의 것이 되게 하소서. 높아지려 하기보다 낮아지게 하시고, 섬김받기보다 기꺼이 내어주는 삶을 통해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진실한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28/2026 6:45: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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