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30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겔 36:8-15
8 그러나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매를 맺으리니 그들이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라
9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10 내가 또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 이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을 성읍들에 거주하게 하며 빈 땅에 건축하게 하리라
11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2 내가 사람을 너희 위에 다니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그들은 너를 얻고 너는 그 기업이 되어 다시는 그들이 자식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리라
1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는 사람을 삼키는 자요 네 나라 백성을 제거한 자라 하거니와
14 네가 다시는 사람을 삼키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나라 백성을 제거하지 아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5 내가 또 너를 여러 나라의 수치를 듣지 아니하게 하며 만민의 비방을 다시 받지 아니하게 하며 네 나라 백성을 다시 넘어뜨리지 아니하게 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셨다 하라
눅 24:44-53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4)[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4)[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인생의 가장 어두운 '깊은 곳'에 빠져본 사람은 압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절망이 엄습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하게 주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시편 130편의 시인이 고백하듯, 만약 주님이 우리의 죄악을 낱낱이 지켜보고 계신다면 그 앞에 온전히 서 있을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깊은 수렁에서 우리를 건져 올리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결백함이 아니라, 주님의 '사유하심'과 '풍성한 속량'입니다. 이 기다림의 끝에서 만나는 새벽빛은 단순히 어둠이 물러가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를 뿌리째 바꾸어 놓는 새로운 창조의 시작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선포한 이스라엘의 회복 역시 단순한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황폐해진 산들을 향해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고장 난 물건을 고쳐 쓰는 수리가 아니라, 내면의 영과 마음을 완전히 새롭게 빚으시는 재창조의 역사입니다.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주어, 억지로 율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해도 주님의 뜻을 따르게 되는 신비로운 변화입니다. 인간의 죄성으로 깨어졌던 피조 세계가 인간의 회복과 함께 새롭게 태어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궁극적인 회복의 청사진입니다.
이 예언적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 비로소 현실이 되었습니다. 3년 동안 예수와 동고동락하며 먹고 자던 제자들이, 그분이 떠나시는 순간 고인을 추모하는 대신 '경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입니다. 어제까지 내 곁에서 함께 울고 웃던 한 인간을 '나의 하나님'으로 예배하게 된 이 급격한 변화는 결코 조작이나 환각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부활이라는 초월적 사건을 목격했고, 성령을 통해 마음이 열려 성경의 모든 약속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전해 받은 '사도적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지식으로 습득하는 책이 아니라, 성령께서 조명해 주실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말씀이 됩니다. 주님은 당신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함을 강조하시며, 제자들을 그 일의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증인의 삶은 자신의 열정만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위로부터 입혀지는 능력, 즉 성령의 충만함이 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사순절의 막바지를 지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성급한 활동이 아니라 약속하신 능력을 기다리는 거룩한 머무름입니다.
사도적 신앙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도덕적 스승이나 삶의 본보기로 삼는 수준을 넘어, 그분을 우리 존재의 통치자로 경배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하늘로 올려지실 때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스승이 곁을 떠났음에도 그들이 슬퍼하지 않고 찬송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제 주님이 시간과 공간에 갇힌 육신이 아니라 영원한 통치자로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이가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가 되시고, 그분이 직접 우리 영혼을 만족하게 하신다는 이 믿음이 우리를 세상의 비방과 수치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사순절은 우리 안에 굳어 있는 마음의 조각들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부드러운 새 영을 구하는 시간입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는 주님의 음성은 오늘 우리의 깨어진 일상 위에도 유효합니다. 깊은 곳에서의 부르짖음이 경배의 찬송으로 바뀌는 신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고백할 때 일어납니다. 부활의 아침이 가까워져 옵니다. 사도들이 가졌던 그 뜨거운 확신이 오늘 우리의 가슴에도 타오르길 소망합니다. 타락 이전의 상태를 넘어 전보다 더 나은 존재로 우리를 빚으실 주님의 손길에 오늘 우리 삶을 온전히 맡겨 봅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
깊은 곳에서 저희를 건져 올리시는 주님,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하게 주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저희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성령을 부어 주셔서, 억지로 지키는 신앙이 아니라 기쁨으로 순종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소서. 사도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경배했던 그 사도적 신앙이 오늘 저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덧입어 일상의 현장에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참된 증인으로 살게 하시고, 날마다 성전에서 찬송했던 제자들의 그 큰 기쁨이 저희 가정과 일터에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