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30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겔 33:10-16
10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12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13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
14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15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
16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
계 11:15-19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1. 깊은 수렁에서 울리는 ‘돌이킴’의 절규
시편 기자는 ‘깊은 곳’(De Profundis)에서 부르짖습니다. 그곳은 자신의 죄악을 직면한 자만이 도달하는 영적 밑바닥입니다. 이 절망의 심연에서 들려오는 에스겔의 메시지는 더욱 엄중합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겔 33:10). 죽음의 권세에 눌려 신음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삶을 두고 맹세하시며 "돌이키고 돌이키라"고 호소하십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직 그가 '사는 것'을 기뻐하시기에, 사순절의 스물일곱 번째 날 우리는 스스로 판 절망의 웅덩이를 버리고 사유하심이 있는 주님의 은혜를 향해 파수꾼처럼 깨어 있어야 합니다.
2. ‘자기 의(義)’라는 함정과 현재적 순종의 무게
에스겔은 ‘과거의 의’가 ‘오늘의 불의’를 덮어줄 수 없으며, 반대로 ‘과거의 죄’가 ‘오늘의 돌이킴’을 막을 수 없다는 신앙의 역동성을 선포합니다(겔 33:12-13). 자기가 쌓은 공의를 스스로 믿고 안주하는 순간, 그 의로운 행위는 하나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는 ‘보는 자’라 자부하던 바리새인들의 맹목과 닮아 있습니다. 구원은 정체된 신분이 아니라 생명의 율례를 따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끊임없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신앙 이력에 기대어 오늘의 죄를 정당화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매 순간 주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는 현재적 순종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3. 상복(喪服)을 입은 교회, 죽음을 뚫고 일어서는 증언
요한계시록의 "두 증인"인 교회는 척박한 세상을 향해 '상복을 입고' 예언합니다(계 11:3). 이는 박해로 인한 슬픔일 뿐 아니라, 심판을 앞두고도 완악한 세상을 향한 거룩한 애도입니다. 교회는 진리를 증언함으로 세상을 괴롭게 하고 결국 주님처럼 무력하게 순교당하는 듯 보이지만, 하나님은 '사흘 반 후에' 그들에게 생명의 영을 불어넣으십니다(계 11:11). 교회의 사명은 세상의 힘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증언하다가 주님의 부활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차원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순교적 영성이야말로 세상을 두렵게 만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진정한 복음의 능력입니다.
4. 세상 나라가 주님의 나라가 되는 대반전의 예배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세상 나라는 마침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로 편입됩니다(계 11:15).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전능하신 이가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는 이 장면은, 역사의 종국이 누구의 손에 있는지를 선포하는 승리의 찬가입니다. 하늘 성전이 열리고 언약궤가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사순절의 중반을 넘어선 지금, 우리는 이 우주적 예배를 미리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의 멸망과 성도들에게 주시는 상급을 확신하며, 우리를 흑암에서 건져내어 영원한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주님의 통치를 찬양합시다.
오늘의 기도
깊은 곳에서 저희의 신음을 들으시는 주님, 과거의 의로움을 훈장 삼아 오늘의 불의를 합리화했던 저희의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돌이키고 돌이키라" 하시는 주님의 애끓는 호소에 정직하게 응답하게 하시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는 진정한 회심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상복을 입은 증인처럼 세상을 향한 애통함을 품고 진리를 증언하게 하시며, 죽음의 권세 앞에서도 부활의 영을 소망하며 담대히 서게 하옵소서. 마침내 모든 세상 나라가 주님의 통치 아래 굴복할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호흡하는 빛의 자녀로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