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3월 13일-시 23, 삼상 15:22-31, 엡 5:1-9
시 23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삼상 15:22-31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25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엡 5:1-9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1)진실함에 있느니라



1. 하나님을 본받는 자, 사랑받는 자녀의 정체성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강력히 권면합니다. 이는 단순히 위대한 성현의 발자취를 따르라는 도덕적 훈계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사랑받는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었기에, 그 아버지의 성품인 용서와 사랑을 자연스럽게 닮아가라는 정체성의 요청입니다(엡 5:1-2).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의지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향기로운 제물로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압도적인 사랑을 먼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의 스물한 번째 날, 우리는 무엇을 '행할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가 누구의 '자녀'인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2. 순종의 결핍이 낳은 우상 숭배의 본질
사울 왕의 비극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욕망과 타협시킨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며 사울의 완고함을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규정합니다(삼상 15:22-23). 이는 에베소서에서 탐욕을 부리는 자를 '우상 숭배자'라고 부르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엡 5:5). 우상 숭배란 단지 불상 앞에 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에 성적 쾌락(음행), 자아(더러운 행위), 혹은 물질적 욕망(탐욕)을 올려두는 모든 행위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백성의 눈치와 전리품을 더 중시했듯, 우리 역시 하나님의 통치보다 내 안의 욕망을 더 청종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3. 존재론적 윤리: '합당함'으로 드리는 응답
그리스도인의 삶은 상을 받기 위함이나 벌을 피하기 위한 '목적론적 노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구원받은 자로서 그 신분에 걸맞게 살아가는 '존재론적 윤리'입니다. 바울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성도에게 합당하게" 행하라고 강조합니다(엡 5:3). 이는 하나님께 합격점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이미 부어주신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대한 기쁨의 응답입니다. 유대교가 율법을 구원의 도구로 삼아 본말을 뒤집었다면, 복음은 우리가 주 안에서 '빛'이 되었기에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고 가르칩니다. 선한 행실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생명에서 맺히는 당연하고도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4. 빛의 자녀가 맺는 진실함의 열매
우리는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들이 맺는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엡 5:8-9). 시편 기자가 고백하듯,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시 23:3).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우리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가 '여호와의 집'이라는 영원한 소속감을 가진 존재임을 확증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누추함과 상스러운 농담 대신 감사의 말을 입에 담으며, 우리를 빛으로 불러내신 주님의 성품을 온전히 반사하는 작은 빛들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며 부족함 없게 하시는 목자 주님, 주님의 말씀을 제 편의대로 해석하며 순종보다 화려한 형식을 앞세웠던 사울과 같은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제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자 거룩한 성도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무언가를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이미 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드리는 '합당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제 안의 탐욕과 더러운 말들을 십자가 앞에 못 박고, 오직 빛의 열매인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오늘을 채우게 하옵소서. 사망의 골짜기 같은 현실 속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며 감사의 찬송을 멈추지 않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3/14/2026 1:05: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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