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2월 28일-시 121, 사 51:4-8, 눅 7:1-10 [주말 묵상] 변하는 세상 속, 변치 않는 그늘이 되시는 분
시 121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사 51:4-8
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1)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눅 7:1-10
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1)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주말 묵상] 변하는 세상 속, 변치 않는 그늘이 되시는 분

낯선 땅에서 일상을 일궈가는 이민자의 삶은 때로 숨을 곳 없는 거대한 돌산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시편 121편의 시인은 묻습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이 질문은 단순한 궁금함이 아니라,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나를 보호해 줄 성벽이나 그늘이 보이지 않는 절박한 탄식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곧바로 고백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며, 가장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우리 오른쪽의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조차 우리를 해치지 못하게 하시는 그분의 세밀한 보살핌은, 보장된 미래가 없는 불안한 광야 길을 걷는 우리에게 유일하고도 완전한 안전지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샤마르(shamar)'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시는 것(Watch over)이고, 다른 하나는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Guard)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상의 모든 권세와 환경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낡은 옷처럼 해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그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만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하늘이 사라지고 땅이 변하는 격동의 순간에도 우리를 '샤마르'하시는 하나님의 눈동자는 결코 흐려지지 않습니다. 비방과 소문에 마음이 흔들릴 때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는, 나를 지키시는 분의 공의가 좀벌레가 먹지 못할 영원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키심을 삶의 태도로 보여준 인물이 바로 가버나움의 백부장입니다. 그는 식민지 주둔군의 수장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으나, 오히려 그 힘을 주민들을 섬기고 사랑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겸손했던 그는, 심지어 당시 재산 목록 중 하나로 여겨지던 종의 아픔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것조차 감당하지 못하겠다며 "말씀만 하옵소서"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오직 주님의 권위만을 신뢰했던 이 이방인 군인의 믿음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최고의 믿음으로 칭찬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긍휼하심은 나인성 과부의 장례 행렬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납니다.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는 청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절망에 빠진 여인을 보시고, 주님은 '가엽게 여기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긍휼(휼, 恤)은 '마음(心)이 피(血) 흘리듯 아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부정을 탈 수 있다는 율법의 경계를 넘어 과감히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분의 심장이 여인의 고통과 함께 피 흘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행렬을 생명의 축제로 바꾸신 주님의 권능은, 우리 삶의 가장 어두운 골짜기까지 찾아오셔서 기어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입니다.

사순절의 한복판을 지나는 지금, 우리에게는 이 긍휼의 주님을 대면할 ‘거룩한 여백’이 간절합니다. 꽉 짜인 스케줄과 생존을 위한 분투 속에 주님을 위한 공간을 의도적으로 비워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그 여백을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나만의 골방’으로 채워봅시다. 그곳에서 우리의 기도는 백부장의 겸손함으로 낮아지고, 우리의 마음은 나인성 과부를 향했던 주님의 긍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사순절의 비움은 단순히 욕망을 참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의 피 흘리는 아픔과 연결하는 거룩한 작업입니다.

오늘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졸지 않고 우리의 출입을 영원까지 지키십니다. 때로 고난이 우리를 덮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살피심과 보호하심이라는 경계 안에서 일어나는 신비로운 섭리입니다. 세상의 영광은 하루살이처럼 덧없이 사라지겠지만, 주님의 구원은 우리 삶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세우는 힘이 될 것입니다. 이번 주말, 나를 위해 피 흘리시는 하나님의 긍휼 안에 머물며, 그분의 그늘 아래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부활의 새벽은 십자가의 고난을 함께 아파하며 그 길을 묵묵히 따르는 이들에게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를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키시는 하나님, 험한 세상 속에서 도움을 찾아 헤매던 시선을 거두어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백부장처럼 나를 낮추어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인생을 거는 믿음을 주시고, 나인성 과부의 슬픔에 동참하셨던 그 긍휼의 마음을 저희에게도 허락하소서. 사순절의 분주함 속에서도 '거룩한 여백'을 지키며 '나만의 골방'에서 주님과 깊이 교제하게 하시고,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결코 폐하여지지 않는 주님의 공의와 구원만을 의지하며 걷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28/2026 8:33: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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