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주중 인사를 위한 묵상 (10/4) - 사도행전 19장 21-41절
하나님의 침묵을 견디는 믿음


사도행전 19장 21-41절

21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마음에 작정하고 "나는 거기에 갔다가, 로마에도 꼭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   그래서 자기를 돕는 사람들 가운데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케도니아로 보내고, 자기는 얼마 동안 아시아에 더 머물러 있었다.

23   그 무렵에 주님의 '도' 때문에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다.

24   데메드리오라고 하는 은장이가 은으로 아데미 여신의 모형 신전들을 만들어서,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돈벌이를 시켜주었다.

25   그가 직공들과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이 사업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26   그런데 여러분이 보고 듣는 대로, 바울이라는 이 사람이 에베소에서뿐만 아니라, 거의 온 아시아에 걸쳐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은 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을 설득해서 마음을 돌려놓았습니다.

27   그러니 우리의 이 사업이 명성을 잃을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아데미 여신의 신전도 무시당하고, 또 나아가서는 온 아시아와 온 세계가 숭배하는 이 여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말 위험이 있습니다."

28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격분해서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29   그래서 온 도시는 큰 혼란에 빠졌고, 군중이 바울의 동행자들인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서 한꺼번에 극장으로 몰려 들어갔다.

30   바울이 군중 속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제자들이 그것을 말렸다.

31   바울에게 호감을 가진 아시아의 몇몇 고관들도 사람을 보내서, 바울에게 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하였다.

32   극장 안에서는, 더러는 이렇게 외치고, 더러는 저렇게 외치는 바람에, 모임은 혼란에 빠지고, 무엇 때문에 자기들이 모여들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33   유대 사람들이 알렉산더를 앞으로 밀어내니, 군중 가운데서 몇 사람이 그를 다그쳤다. 알렉산더가 조용히 해 달라고 손짓을 하고서, 군중에게 변명하려고 하였다.

34   그러나 군중은 알렉산더가 유대 사람인 것을 알고는, 모두 한 목소리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하고 외쳤다.

35   드디어 시청 서기관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나서 말하였다. "에베소 시민 여러분, 우리의 도시 에베소가 위대한 아데미 여신과 하늘에서 내린 그 신상을 모신 신전 수호자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36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 여러분은 마땅히 진정하고, 절대로 경솔한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37   신전 물건을 도둑질한 사람도 아니요 우리 여신을 모독한 사람도 아닌 이 사람들을, 여러분은 여기에 끌고 왔습니다.

38   그러므로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를 걸어서 송사할 일이 있으면, 재판정도 열려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당사자들이 서로 고소도 하고, 맞고소도 해야 할 것입니다.

39   여러분이 이 이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것은 정식 집회에서 처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40   우리는 오늘 일어난 이 일 때문에, 소요죄로 문책을 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요를 정당화할 수 있는 아무런 명분이 없습니다."

41   이렇게 말하고서, 그는 모임을 해산시켰다.



에베소에서 놀라운 부흥과 "비상한 기적들"을 경험한 바울의 사역은, 도시의 경제적 기반을 흔들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저항에 부딪힙니다. 아데미 여신상의 모형을 만들어 팔던 은장색 데메드리오는, 복음이 자신들의 사업과 종교적 자부심을 위협하자 직공들을 선동하여 도시 전체에 큰 소동을 일으킵니다. 흥분한 군중은 바울의 동역자들을 붙잡아 극장으로 끌고 갔고, 도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복음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가장 큰 위기를 불러온 것입니다.

이전의 위기 상황들과는 다르게, 이 극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눈에 띄게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빌립보 감옥을 흔들었던 지진도, 천사의 구출도 없었습니다. 위기는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과 중재 능력을 가진 '시청 서기관'이라는 한 세속 권력자의 연설을 통해 겨우 진정됩니다. 바울을 통해 강력하게 역사하시던 성령의 능력이 마치 '증발'된 것처럼 보이는 이 순간은, 우리에게 영적 여정의 중요한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성령의 역사에는 뜨거운 부흥의 '우기'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침묵의 '건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건기'를 지나는 믿음의 본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외치셨던 기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절규 속에서 발견됩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불신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붙들고 부르짖는 역설적인 믿음의 절정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뜨거운 체험 속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침묵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그분의 보이지 않는 손길과 계획을 신뢰하며 묵묵히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것을 통해 더욱 깊어집니다.

겨울의 활엽수는 모든 잎을 떨군 채 앙상한 가지만 남아, 마치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생명의 활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침묵과 정지의 시간, '건기'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무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그 안에는 봄에 싹을 틔울 생명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보면 죽은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생명의 역사가 진행 중입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도 이처럼 하나님의 활동이 보이지 않는 겨울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의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믿음이 더 깊이 뿌리내리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할 제목]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영적인 건기를 지날 때, 절망하거나 의심하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버림받음의 고통을 외치셨던 예수님을 기억하며 보이지 않는 중에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10/4/2025 5:01: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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