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가서 6장 8절 [26]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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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는 가끔씩 율법의 정신 또는 참된 경건의 본질을 섬광처럼 꿰뚫는 명문장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나,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 바울의 말씀, 또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는 야고보(1:25)의 말씀 등이 그렇다. 여기 미가서의 이 구절도 그런 말씀 중 하나다.
먼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이미 보여주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르는 바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알고 있는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미가는 앞에서 이런 독백을 한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6-7절).
여러 제물들을 기뻐하는 것은 이방신들의 특징이다. 이방인들은 심지어 자기 아들을 불살라 바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종종 제물의 가치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을 더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청난 헌물과 심지어 극단적인 고행까지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런 제물이 아니다. 이사야는 온갖 제물을 바치면서 동시에 악을 행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혐오를 전한다(사 1:13-14). 주님도 호세아의 말을 인용하여 같은 점을 지적하셨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공의와 인자,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공의와 인자는 하나님의 성품의 양대 기둥이지만 서로 충돌할 수 있다.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지키려면 무엇보다도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겸손한 동행보다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것은 없다.
📚 김현회 목사의 성경 강해 [1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