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 성도들과 나누는 묵상>
2019년 7월 27일(에스겔서 11장 14-25절)_새번역
1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사람아, 너는 반역하는 백성 가운데 살고 있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려고 하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3그러므로 너 사람아, 그들이 보는 앞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대낮에 짐을 싸 가지고 길을 떠나거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것처럼, 네가 살고 있는 그 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가거라. 그들이 반역하는 백성이기는 하지만, 혹시 그것을 보고서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4또 너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네 짐은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의 짐처럼 대낮에 내다 놓고, 너는 저녁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포로로 끌려가듯 나가거라. 5너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성벽에 구멍을 뚫고, 네 짐을 그 곳으로 내다 놓아라. 6너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어깨에 짐을 메고, 어두울 때에 나가거라. 너는 얼굴을 가리고, 다시는 더 그 땅을 보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징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7그래서 나는 명을 받은 그대로 하였다. 내 짐을,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의 짐처럼, 대낮에 내다 놓았다. 그리고 저녁때에 손으로 성벽에 구멍을 뚫고, 어두울 때에 나가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어깨에 짐을 메었다. 8이튿날 아침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9“사람아, 저 반역하는 족속 이스라엘 족속이 ‘네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하고 너에게 묻지 않았느냐? 10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짐은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는 왕과 그 도성 가운데 사는 이스라엘 족속 전체에 대한 징조다’ 하여라. 11너는 또 그들에게, 네가 그들의 징조라고, 네가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그들이 하게 될 것이라고, 그들이 추방되어 이렇게 짐을 메고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12왕도 그들과 함께 어깨에 짐을 메고, 어두울 때에 성 바깥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이 성벽에 구멍을 뚫고, 짐을 내다 놓을 것이며, 왕은 눈으로 그 땅을 안 보려고 얼굴을 가릴 것이라고 말하여라. 13내가 그물을 쳐서 왕을 망으로 옭아 그를 바빌로니아 백성의 땅 바빌론으로 끌어 가겠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그 땅도 못 보고 죽을 것이다. 14내가 왕의 경호원과 경호부대를 다 사방으로 흩어 버리고, 뒤에서 내가 칼을 빼어 들고 쫓아가겠다. 15내가 그들을 이방 사람들 가운데로 흩어지게 하며, 모든 나라 가운데로 쫓아 버릴 그 때에야 그들이 비로소, 내가 주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16그러나 나는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을 남겨서 전쟁과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죽지 않게 하고, 그들이 이르는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들이 전에 저지른 역겨운 일을 모두 자백하게 할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선지자의 사명과 역할을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선지자를 통해 하시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세상 속에 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 자신의 형통과 복락을 위해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속해 사는 자들로 이 세상 나라 가운데 선지자와 같은 부르심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는 순종의 사람입니다.. 선지자는 삶으로 말씀을 드러내고, 말씀을 해석해 주는 사람입니다. 선지자 자신의 삶의 의미를 알고 해석하지 못하면 그 자신의 삶조차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징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7그래서 나는 명을 받은 그대로 하였다. “(6-7절)
3절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해시키십니다. 이런 부담감이 많은 행위 예언을 하는 이유를 말씀하시며 납득시키십니다.
”그들이 반역하는 백성이기는 하지만, 혹시 그것을 보고서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3절)
혹시나 바벨론에 있는 남유다 백성과 아직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 중에 어떤 이들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에서 이렇게까지 행하게 하십니다.
깨닫게 되는 점은, 나의 부르심을 나 자신이 잘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주를 알게 되는 ‘비로소’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수종들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야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