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童心)
내가 처음 학교에 입학을 하여 학교생활을 시작할 때의 동심으로 세상에서 제일 예쁘던 담임선생님 생각이 난다
나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 여섯 살이 되면서부터 나의 아버지로부터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으며 천자문을 배웠다.
그러나 천자문을 모두 깨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그 때문에 이미 한글을 모두 익혀 읽고 쓰던 기억이 난다.
일곱 살이 되어 새 양복을 입고 할머니를 따라 학교에 갔다. 할머니가 입학 수속을 모두 해 주셨다. 1학년 2반을 배정 받았다. 며칠 동안은 할머니와 함께 학교엘 갔다.
학교는 나의 집에서 약 3 km 정도 떨어진 덕소(德沼)라는 읍 소재지에 있는 지금의 덕소 초등학교를 매일 동리아이들과 함께 걸어 다녔다.
나는 이미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글을 모두 익히고 입학을 했으므로 학교에 들어가면서 부터 선생님 눈에 띠었고 전 과목을 모두 백점을 맞는 등 우리 반에서 일등을 하게 되었고, 반장을 하면서 선생님으로부터는 귀염을 받는 우등생이 되었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자 선생님인 배 선생님이었다. 학교에서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 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라는 황홀함이 나를 기쁜 흥분 속에 젖게 했다.
학교에 가는 큰 기쁨의 하나가 우리 선생님 때문 이었다.
어쩌다 내 옆에 오시면 우리 집에서는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황홀한 냄새를 내 코에 풍겨주시는 선생님이 정말 너무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에는 여자라곤 할머니 와 엄마뿐 인데 두 분 다 농사일을 하면서 땀 냄새나 풍기는 쭈글쭈글한 시골 여인들인데 배 선생님 같은 예쁜 여인이 풍겨주는 이런 황홀한 냄새는 처음 맡아보았기 때문이다.
일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어 2학년 2반으로 반 편성이 되었는데 하루는 배 선생님이 조회를 마친 운동장에서 나를 불러 세워 놓고 “이번에 내가 너희 반을 또 담임을 하게 되었다. 너 어떻게 생각하니?” 하며 묻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2학년이 되면 담임선생님이 바뀔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속으로 걱정을 했는데 그런 말씀을 주시는 배 선생님 말씀에 날아갈 듯이 기뻐 소리라도 지르며 나의 기쁨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는커녕 수줍은 표정으로 나온 대답이 “그렇지요 뭐” 라는 마음에 없는 대답을 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배 선생님은 “녀석 두” 하면서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시고 교무실로 들어가셨다.
나는 그 당시 왜 그렇게 바보 같은 표정으로 엉뚱한 대답을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저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그 생각이 생생한 기억으로 기억의 샘에서 이따금씩 떠오르고 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난리가 났다면서 인민군이 쳐들어 왔다고 하여 학교엘 가지 못하게 되었다. 학교엘 가지 못하니까 예쁜 우리 선생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 제일 슬펐다.
시간이 갈수록 선생님 걱정에 조바심이 났으나 세상은 나의 걱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엄청나게 변해버렸다. 그 후 나는 우리 선생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하였다.
어리고 순수했던 나의 동심은 전쟁의 소용돌이로 인해 무참히 뭉개져 버렸다.
정 묵(正 默) 김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