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同行)
전 교인이 하나가 되어 동행하는 교회를 이루기 위해 핀란에 있는 열린문 기도원에서 수련회를 가졌다. 몸이 불편하셔서 요양 중에 있는 분들을 제외하고 전 교인이 대부분 다 참석을 했고 특히 대학 부 학생들 까지 동행을 했다.
동행이라 함은 함께한다는 의미이다. 가치관을 함께하고 목적을 함께하고 뜻을 함께하고 생각을 함께하며 삶 자체를 함께하는 것을 동행이라고 한다. 종교적 의미로는 함께 행실(行實)을 닦고 수행(修行)을 한다는 의미이다.
길을 걸을 때 같은 방향으로 섞여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동행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 울타리 안에 섞여있음을 가리켜 동행한다고 하지 않는다.
창세기 5장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는 말씀이 있다. 모든 정신과 가치관과 뜻과 삶의 목적 자체를 서로 함께하며 수고를 한 에녹을 하나님이 데려가셨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라고 한 것이다.
물론 한 가족 구성원이라 할지라도 가족 모두가 생각이 다르고 뜻도 다르고 목적하는 바가 다르다면 동행한다고 볼 수는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동행하여 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이웃과 동행하는 공동체가 되어 지체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바르게 알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기 원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의 삶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가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는다(잠16:21)고 했다. 이 지혜는 하나님께 합한 뜻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 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영역이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다.
통찰력이 곧 지혜이기 때문이다. 솔로몬 왕은 그 지혜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의 옳고 그름과 선악을 분별하는데 쓰기위하여 하나님께 간구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합당히 여기시고 엄청난 축복과 함께 지혜로운 왕이 되도록 하신 것이다. (열왕기상 3장9절에서13절까지 말씀)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우리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자가 얻을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자가 되어야 한다. 동행하는 교회의 삶의 실천과 적용을 위해 많은 분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서로 책임을 지고 사랑의 수고를 하며 동행하는 삶을 이루기 위하여 애를 쓰고 동행하는 교회의 모습과 의지를 표출(表出)하기 위해 수고를 하였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지혜 곧 명철과 지식을 간구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동행하는 삶을 실천하고 적용할 최소 단위의 이웃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명령하신 지상명령인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시편 119:66) 하고 엎드려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겠다.
모두 모두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전 교인들에게 감사한다.
정 묵(正 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