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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돈
말씀으로 살아/김현회 詩

 


 

말씀으로 살아

말씀으로 살아

블타오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 몸을 사르고

영혼만 남아 반짝이는

정결한 말씀으로

그렇게 살아



머언 태고의 적막

어둠을 가르고 빛으로 드러난

말씀



화염 솟아오르는 순백의 거룩

바위를 뚫고 돌판에 새겨진

말씀



'여호와의 말이니라' 외치던

미칠 것 같은 분노와 슬픔

끝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그 날의 소망으로 피어오른

말씀



마침내 그 날 이르러

하늘과 땅이 만나고

육신이 되어 우리들 가운데 오신

그 말씀



말씀으로 살아

영혼을 찔러 쪼개고

만물을 벌거벗겨

영원한 당신 앞에 서게 하는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으로

그렇게 살아..


10/10/2015 7:39:00 AM

1 개인 의견이...
1.
왜 질그릇인가?/김현회



몇 주 전에 신문에 난 우리 교회 소개를 보고 어떤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으레 우리 교회의 위치나 예배 시간을 물어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분은 우리 교회 이름이 왜 질그릇교회냐고 물으셨다.


나는 처음에 그분의 질문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 교회 이름은 고린도후서 4:7에서 따온 것이라고 그 유래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분은 그 정도는 자신도 안다고 하면서 질그릇이란 이름이 좋지 않으니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어느교회 교인이라고 소개한 그분은 자신도 예전엔 연약한 질그릇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값싸고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간증했다. 느닷없이 교회 이름을 바꾸라는 그분의 요구에 나는 당황했다. 더욱이 그때 다른 사람과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에 더 이상 통화할 수 없다고 밝혔는데도 한사코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 하는 그분의 무례함에 불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느낀 씁쓸한 감정의 뿌리는 그분의 무례한 태도나 황당한 주장보다는 그분이 갖고 있는 신앙적 관점, 즉 요즘 한국 교계에 널리 퍼져있는 영광의 신학에 있었다.영광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중세 가톨릭은 교권으로 세상을 지배하면서 힘과 영광을 추구했다. 지금은 물론 그런 식으로 기독교의 기득권을 추구하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증명을 세상에서의 성공과 승리에 두려고 한다.


이렇듯 장차 올 부활의 권능과 새 세상의 영광을 이곳에서 지금 누려야 한다는 주장이 영광의 신학이다. 반면에 루터는 하나님의 영광은 십자가 안에 감춰져 있음을 역설했다. 세상의 눈에는 연약하고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 실패요 패배로 보이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요 권능이요 승리라고 주장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약함 가운데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강해지고 내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이 내 힘이 되시고 내 승리가 되시는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학이요 질그릇의 영성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스스로 겸비할 때 우리를 쓰신다. 우리의 재능, 지식, 건강, 재물, 지위 등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은사요 수단일 뿐이다. 그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힘이요 생명임을 고백하자. 기꺼이 질그릇의 길을 감으로써 보배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드러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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