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진정(眞正)한 갑(甲)
불가사의(不可思議)하기만한 로마의 역사와 문명(文明). 그것은 인간사회 속에 영원(永遠)히 존재하는 지배(支配)계급인 갑(甲)들의 꿈에 의해 을(乙)의 희생(犧牲)으로 이루어진 文化였다.
인류문명은 지배자와 피 지배자 즉 갑(甲)과 을(乙)의 구조(構造)라는 힘의 논리(論理)에 의해 형성(形成)되어 왔다. 이러한 지배구조(支配構造)의 역사(歷史)는 모든 세대(世代), 모든 문화권(文化圈)에서 예외가 없다.
오늘날 소위(所爲) 자유민주주의를 표방(標榜)하는 선진국(先進國) 사이에서도 이 힘과 권력(權力)에 의한 부당한 억압구조는 없어지지 아니하고 합리적 명분아래 더욱 은밀(隱密)히, 혹은 조작된 속임수에 의해 갑(甲)과 을(乙)의 권력구조 속에서 을(乙)은 신음하고 탄식 하고 진통(陣痛)을 겪고 있다.
서열(序列)구조로 형성된 갑(甲)의 우위 세력(勢力)은 힘을 휘두르며 못하는 짓이 없고, 어쩔 수 없이 을(乙)에 속한 자 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인격(人格)위에 군림하며 공평하지 않은 방법으로 부당한 갑질(甲疾)의 횡포에 의해 을(乙)들은 밀릴 수밖에 없는 현상들이 어떤 조직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악한 짓의 한계(限界)를 모르던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비롯한 온 나라를 강도의 소굴로 규정하며 일갈(一喝)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의 종말을 내다보면서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하며 불의한 이득을 취하고 폭력(暴力)과 압박(壓迫)을 가하는 자들은 멸망(滅亡)당할 것을 예언(豫言) 하였다.
나사렛 예수그리스도는 복음 선포(福音 宣布)를 통하여 불의(不義)한 사회구조(社會構造)를 전면적(全面的)으로 거부(拒否)하고 억압(抑壓)당하는 자가 함께 구원(救援)받을 수 있도록, 수고하고 무거운 자 들을 부르시어 쉬게 하시며, 더 이상 힘없는 자들이 학대(虐待)받고 이용(利用) 당하고 억누름 받기를 그만두게 하여 사랑의 형제로 맞이할 것을 선포하였다.
아직도 수많은 이 땅의 교회지도자(敎會指導者)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정의(正義)가 배제(排除)된 화려(華麗)한 종교적 심성(宗敎的 心性)을 충족시키며 잠시적(暫時的) 위안(慰安)과 복(福)을 빌어 갑(甲)의 계층이 되는 데만 급급(急急)한다면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참사랑의 모습은 어디 계신 것일까?
의인(義人)은 시냇가에 심기어진 나무로 성경은 노래했다. 악(惡)을 꾀하는 자리에 가지 않고, 죄인(罪人)의 길을 걷지 않으며, 비웃음을 일삼는 오만한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기쁨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그래서 의인은 시냇가에 심기어진 나무와 같아 그 잎사귀가 무성(茂盛)하고 철따라 열매를 맺는다고 노래하였다.
이 시대의 의인(義人)은 누구이며 갑은 누구인가?
아마도 그는 무한(無限)하신 하나님의 자비(慈悲)에 믿음의 뿌리를 내린 사람이고, 세상 적 갑(甲)의 삶을 살려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의(義)롭다 칭함을 받은 확신으로 하나님에 근거(根據)한 삶을 살려하는 그런 사람이 이 시대의 의인(義人)이요, 진정(眞正)한 갑(甲)이 아니겠는가? 正 默 金 賢 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