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산 모퉁이를 돌아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하자 눈 앞에 바다가 나타났다.
촌놈은 바다를 본 적이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그게 바다라는 걸 알았다.
어디서 들었는지 책에서
보았는지는 몰랐지만 수평선이라는게 눈안으로 들어왔다.
그게 부풀어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가슴이 조용히
뛰었다.
크게 될 놈들은 그럴 때 큰
포부라도 가질 만 하지.
'내가 저 바다로 나가 세계를
정복하리라'
뭐 대충 이와 비슷한 거창한 꿈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촌놈은 멀미 때문에
만사가 귀챦았을 뿐이었다.
6.25가 막 끝난
후였다.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던 시골에서
태어난 10살 먹은 촌놈이 출장가는 아버지를 따라 부산에 있는 큰집에 가면서 난생 처음 바다라는 걸 본 것이다.
촌놈은 그 후 바다가 있는 그
곳 대처로 나와 학교를 다니며 잔뼈가 굵어져 갔다.
촌놈이 다니던 학교는 작은 섬 대 여섯개가 가물 가물 수평선에 걸쳐져 있는 오륙도가
보이는 언덕배기에 있었다.
조회 시간에 교가를 부르면
교가에도 바다가 있었다.
"오륙도 어린 섬들
낙조(落照)에 젖어 있고, 연찬(硏鑽)에 겨운 배들 가물가물 떠서 온다~~"
가사는 시인 이은상씨가
썼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매일 바다를
보고,여름이면 부근의 바다에서 개구장이 짓을 하고 바다를 노래하며 자랐다.
그러나 촌놈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바다는 10살 때 멀미를 하면서 처음 본 그 바다와 부풀어 올라있던 그 수평선이다.
Culver 길을 따라 남쪽으로
쭉 가다 Newport Coast Highway를 만나 왼쪽으로 꺽어지면 완만한 언덕길은 오른다.
왼쪽 언덕위와 오른쪽에 늘어선
좋은 집들을 눈요기 하며 지나는 사이에 차는 금방 내리막길로 들어서고 눈앞에는 푸른 잉크를 풀어놓은 것 같은
쪽빛 바다와 부풀은 수평선이 펼쳐진다.
Crystal Cove 앞
바다다.
촌놈에겐 10살 때 처음
보았던그 바다와 그 수평선 으로 다가온다.
촌놈이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생각은 번개처럼 내고향남쪽바다로 달려간다.
차에 같이 탄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촌놈의 눈시울이 약간 촉촉해진다.
생각하면 아쉬운 일도 많고
부끄러운 일 투성이지만,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
김재현 장로님,김영순 권사님은
촌놈이 Chicago에서 이 곳으로 이사와 처음 만난 사람들 중에 지금까지 교제를 이어오고 있는 형제 보다 더 가까운
사이다.
오래 전이지만 장로님이
심장수술을 두번이나 받고,이제 권사님이 아프다.
다음 주 수술을 앞두고 네 사람이 가벼운 대화를 하며 같이 바다를
바라본다.
모두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는 없지만,우리가 하는 어떤 일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나님,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사랑하는 김영순 권사님을 꼭 껴안아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