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삼는 삶, 제자 되는 삶
오랫동안 소식 모르고 지내던 믿음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오지에서 사역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시절 한국 예수전도단(YWAM)에서 훈련 받을 당시 초기 사역자 간사님들은 모범이 되는 분들이셨습니다. 말이 아닌, 가르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 후 가르친 대로 제자삼고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선교지로 나갔습니다. 그런 삶의 모범을 보았기에 저 역시 목회자로서 성공(?)이 보장되는 큰 교회를 떠나 몽골 선교사로 갈 수 있었습니다.
고신 교회에서 신앙의 갓난아이로 자라고 있던 저는, 예수전도단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의심의 마음으로 분석하고 분석했습니다. 첫 관문은 예배였습니다. 시편에 나오는 고백들로 예배한다는데 손을 들고 찬양했습니다. 함께 활동하는 선교합창단 친구들과 ‘찬양과 경배 세미나’에 참석해 드린 첫 예배는 충격이었습니다. 손을 들고 도저히 찬양할 수 없었습니다. ‘가식 아닌가? 이게 뭐하는 거지?’ 갈등의 시간이 한 시간 정도 흘렀습니다. 한 가사가 견고한 마음과 생각을 두드렸습니다. ”.. 주의 손에 양이라~“ ... ‘그래, 나는 양인데, 나를 품어 주시는 주님께 내 손을 들어 찬양하는 것은 이상한 게 아냐’ 타고난 천성대로 생각과 마음이 동의하니 거부감, 의심이 사라졌고 자유함이 밀려 왔습니다.
신학대학원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교회에는 교회가 교회되도록 구비한 제도가 있습니다. 신학교 입학과 학년 진급 과정은 교회와 노회가 관할, 3년간 M. Div. 과정 후 강도사가 되고, 부목사가 된 때는 교회와 노회와 총회가 관할합니다. 그리고 교회 담임목사가 지도합니다.
고려신학대학원 M. Div.과정은 일제치하 신사참배 반대라는 고신교단의 역사를 근간으로 하여, 개혁주의 신학의 안목을 길러, 바른 신학의 프레임을 갖추고, 졸업 이후 스스로 신학적 작업과 목회를 감당 하도록 구비해 주는 과정입니다. 자연스럽게 저의 신앙의 여정을 돌아보며, 과오를 따지며 교회의 사역자로서 준비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였습니다.
당시 신대원은 여러 가지 신학적 이슈로 홍역을 앓고, 교수님들의 세대교체가 일어난 초기 시절이었습니다. 유수한 학업 과정을 마친 교단의 선배 교수님들이 열정을 다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신앙과 생활의 순결, 코람데오 정신, 정통신학, 개혁주의 신학, 균형 잡힌 신학 뿐 아니라, 역사의 과오를 가감 없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신학대학원 학생으로서 뿐 만이 아니라,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 시절을 거치며 훌륭한 담임목사님들과 함께 교회를 섬기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요 특권 중의 특권이었습니다.
담임목사님들 역시 귀한 스승이 되어주셨습니다. 어떤 고민 없이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가르침과 삶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노회와 총회뿐 아니라 선교지에서 사역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아직도 그분들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자 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분별력을 총동원합니다.
여기저기서 스승이 되어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입니다. 그런데, 따를 만한 스승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스스로 주님의 제자 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자꾸만 부족합니다. 무엇에서 실패하고 있는 가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됩니다. 살피게 됩니다. 무릎 꿇게 됩니다. 이상만이 앞서고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가? 결국 스스로를 의심하고 허물고 깨뜨리는데 귀착 됩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스승이 없으니 더욱 주님을 갈망하게 됩니다.
‘먼저 제자가 되고 제자 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절망의 끝에서 소망을 붙잡습니다. 그분의 부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질그릇에도 보배로우신 주님이 주인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