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동산을 바라보며
2007년 가을, 미국에 처음 도착한 다음 날, 제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공부하러 온 학교에 가서 도착한 것을 신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공항에 마중 나와 주신 지인의 도움으로 그분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파사데나로 갔습니다. 사무실을 찾아 나섰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땅에서 무엇인가가 갑자기 솟아오르더니 갑자기 ‘칙칙칙칙..’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물을 뿜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며칠 후 알게 되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몽골과 같이 광야와 같은 곳이고 물이 귀한 곳인데, 물을 공급해 주는 시스템을 통해 잔디도 나무도 자라게 해 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멀리 있는 강으로부터 이곳 남가주까지 물이 공급되어 푸르고 푸른 나무와 풀과 꽃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경이로웠습니다. 스프링클러 사건을 통해 ‘이래서 미국이 선진국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나무를 보거나 잔디를 보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프리웨이를 운전하며 가다가도 ‘미국은 참 놀라운 나라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몽골을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몽골은 물이 참으로 귀합니다. 서민들이 사는 동네 중심에는 물을 저장하는 탱크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철이 들기도 전에 하는 중요한 일이 있는데, 저마다 손수레에 작은 물통을 얹어 놓고 그 저장 탱크가 있는 곳에 100원 정도 돈을 내고 마치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듯 물을 받아 집집마다 배달하는 것이 몽골 아이들의 중요 일과 중 하나입니다.
물은 참 소중하다는 것을 그렇게 배웠습니다. 한국의 물이 얼마나 깨끗하고 질이 좋은 것인지는 잠시 영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절실히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인식을 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물은 그런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미국에 산지가 11년이 되어 가는데, 이번 우기처럼 많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비가 내린 것은 처음 경험합니다. 저희 집에서 저만치 먼 곳에 나지막한 동산들이 보입니다. 그 동산에 푸르고 푸른 잔디로 가득합니다. 이전에 전혀 보지 못한 광경입니다. 저의 마음조차도 풍성해지는 것 같습니다.
물이 닿는 곳마다 활기찬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환상과 비유를 통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의 역사를 설명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물이 공급되지 않는 곳에는 한국에서 보지 못한 그 흔하디 흔한 잔디조차 뻗어나가지 못합니다. 딱 그곳까지 경계선이 생깁니다. 물이 공급되는 곳까지입니다.
나도 갈급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생명, 능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살아 있는 자답게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내 마음에 푸르고 푸른 생명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물과 같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이른 비와 같고 늦은 비를 내려주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대학시절 함께 사용하던 기독교 동아리 방에 가면 눈에 들어오던 한 글귀가 생각납니다. “민족의 가슴마다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