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
최선을 다헤 설교를 준비하지만 막상 정해진 시간에 온 힘과 지성과 열정을 다해 설교를 전한 후 말씀이 계속 마음에서 맴돌 때가 있습니다. 설교가 논리적인 글의 형태로 작성되었다가 말씀으로 선포되는 시간은 최고의 긴장에 이릅니다. 설교문을 적으면서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지만, 선포의 시간 가장 중요한 주체가 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고단한 노동(?)입니다.
저의 참람한 인간성과 죄로 가득한 삶의 결과를 잠재워야 하며, 부족함 투성이 인간의 전존재를 철저히 숨기고 십자가에 못박기란 심히 두렵고 힘이 듭니다. 의례적으로 주일 대표기도자들이 “목사님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 말씀”이라는 표현을 쓰실 때는 가슴이 아프고 두렵습니다. ‘과연 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정작 설교 행위를 마치고 축도를 온 마음을 다해 선포하고 인사를 나누기 위해 본당 정문을 향해 걸어갈 때는 언제나 내적 갈등이 큽니다. 열에 아홉은 어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고, 나만이 아는 동굴에 들어가고 싶은 최고의 절정의 시간입니다.
지난 주간은 좀 심했습니다. 첫 사랑이 무엇일까? 일주일 내내 마음에서 맴돌고 또 맴돌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마치 사랑이 식어진 연인 간에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메시지와는 다른 무엇이 아닌가 계속 생각되어졌습니다. 결국 ‘첫 사랑’ 보다는 ‘처음 사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은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 사랑을 존재론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을 기억하게 합니다. 모든 존재의 처음이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으로 나를 창조하셨고 사랑으로 이끄시고 사랑으로 구원해 주시고 사랑으로 살도록 해 주십니다. 사랑하시기에 대속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은, 내 인생에 베푸신 은혜, 그 섭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사랑에 젖어들고 사랑을 덧입어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시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눈물 흘리며 회개한 그 순간을 기억하거나, 그 사랑을 깨닫고 엄청난 헌신을 기쁨으로 감당하던 그 시절, 그 순간, 그 감정, 그 사랑으로 돌아 갈 것을 호소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분초마다, 사랑의 본체이시며 사랑이라는 선교적 행동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잠기는 것이 나 자신에게 얼마나 절실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 사랑은 바로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 초대임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저녁에는 신대원장이신 신원하 교수님의 방미로 오랜만에 고신신대원 동문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토요일에는 따로 친한 친구목사와 후배 목사와 함께 원장님과 아침 식사를 나누며 지난 시간 신대원 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처음 사랑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증하는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사랑, 그 사랑, 사랑이신 하나님이, 세밀하게 인도하신 그 순간들이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움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부패한 나로 그의 자녀 되게 하시는 그 아름다운 사랑을 찬양합니다. 처음 사랑이신 그분이 저를 질그릇 교회로 인도하심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