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맞이하며
목사가 감당해야할 기능과 역할이 있습니다. 교회 헌법은 이렇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목사의 직무는 다음과 같다. 1. 교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 2.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고 설교하는 일, 3. 찬송을 지도하는 일, 4. 성례를 거행하는 일, 5. 하나님의 사자로서 축복하는 일, 6. 교인을 교육하는 일, 7. 교인을 심방하는 일, 8. 목회 계획 및 실행, 9. 예배 관장, 10. 설교와 설교자 선정하는 일, 11. 교회의 각 기관을 지도하는 일, 12. 치리권을 행사하는 일, 13. 준직원, 임시직원 임명 및 면직하는 일>
요즘 시대 목사의 직무를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교회가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는 일들이 수없이 발생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목사가 있기에 목사의 위신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목사에 대한 불신이 팽배합니다. 이것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율법과 율법주의가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율법과 권위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권위주의와 율법주의는 ‘악’입니다. 아이를 씻기는 물이 더러워져 물을 버리는데 아이까지 버린다는 비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시대는 참으로 많은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바른 것을 분별하고 실천하고 시도하는 일들이 조심스럽습니다. 무엇이 우리가 함께 지켜 나가야 할 기준(율법)인지 제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질서를 세우고 직무를 감당하기 위한 바른 권위를 세우고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겸손을 유지하며 권위의 오용을 경계하는 가운데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 자체가 모호해 지는 시대입니다.
그래도 부르심이라는 것을 믿기에 부르심 받은 자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일에 게으를 수 없습니다. 목사의 직무 중 교육의 기능이 강화된 것이 개신 교회와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태생적으로 신부님들 이외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로 예배를 드리고, 예전을 중심으로, 교회에 구원이 있다는 신학을 바탕으로 한 카톨릭에 반하여, 말씀을 회중에게 돌려주기 위해 자국어로 번역하고 자신의 언어로 읽고 깨닫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터전에서 시작한 지라 설교나 교리 교육 등등 비교적 목사의 사역이 교육에 치우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목사라는 단어의 원어는 목자에 더 가깝습니다. 들에서 양을 돌보는 목자 말입니다. 목자는 양을 돌봄에 있어서 악한 들짐승으로부터 보호하고, 좋은 꼴을 먹이고, 적절한 물길을 찾아 인도해야 합니다.
뒤에서 돌보기도 하지만 앞으로 끌고 나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해가 바뀌면 목회자들이 해야 하는 일 중 어려운 일이 방향성을 설정하고 조직을 새롭게 하는 직분을 재편하는 일입니다. 저 역시 그러한 일을 미룰 수는 없습니다. 더불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질그릇 교회에 부임한 지 만 5개월이 되어 갑니다. 한 분 한 분 성도님들을 알아가고 그 상황과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더 많겠지요.. 사람이 서로를 알아 가는대는 적절한 시간과 신뢰의 관계가 형성되어져야 나누어지고 비추어지고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이번 주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