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고민 거리

고민 거리

 

고민거리가 자꾸 많아 집니다. 왜 고민이 되는 것일까요? 아마 저의 능력 밖의 일들이 많아지는 모양입니다. 능력은 안되고, 감당해야할 것 같은 부담감이 되는 일들이 많아지니 고민이 되는 모양새입니다.

고민의 다른 표현은 염려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염려라는 단어를 헬라어 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고 합니다. 그릇이 깨어진 것 같은 상태를 말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음이 깨어져서 이리 저리 분산되어 버린 것입니다. 깨어진 마음은 온전히 무엇인가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그릇 분연의 임무조차 수행 불가능해 집니다. 그래서 믿는 자를 유혹하고 믿는 자가 하나님으루부터 받은 사명을 방해하고 성취되지 못하게 하는 마귀에게는 최고의 무기 중 하나 인 샘입니다.

담임목사로서 직임을 맡게 되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한 일들도 발생합니다. 제 능력 밖의 일들, 요구들도 많아집니다.

어제 저녁 시간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스팸 통화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통화를 시작했습니다. 한 자매님이셨습니다. 교회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플라센티아에 사신다고 하였습니다. 플라센티아에 살기에 플라센티아에 있는 교회를 검색해 보니 저희 교회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대화의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편 분이 미국인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으신 분이랍니다. 남편 분이랑 꼭 교회를 같이 나가고 싶은데, 큰 교회는 합당치 않은 것 같다는 것입니다. 남편 분이 복음을 몰라 잘 설명해주고 교제해 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교회를 찾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혹시 그 교회에 영어예배가 있나요?” 라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순간 참 많이 당황이 되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교인의 숫자를 하나 늘려야겠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나 늘 고민하고 멀리 내다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차인데, 너무 먼 훗날 한번은 가능해 보이는 일이 바로 눈 앞에 전개되는데 조금은 실망이 되고 당황이 되었습니다.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없었고, 한 영혼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낼 방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 매월 마지막 주일에는 한국어, 영어 설교를 함께 합니다... 죄송합니다. 내일은 영어로 설교를 듣게 도와 드릴 방도가 지금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조심스럽게 그 자매가 묻습니다. “그럼 혹시 주위에 영어 예배와 한어 예배를 같이 드리는 교회 추천해 주실 만한 교회는 없나요?” 제가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 저 교회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녁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설교를 리마인드 하고 다시 정리하고 새벽을 맞이하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저 개인의 역량과 우리 공동체의 역량이 함께 맞아져야 하고 성장되어야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공간 가운데 우리 교회의 사명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것을 찾아 나가야 하고 감당할 능력을 구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이 생명을 얻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고민 거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며 마음을 추스립니다.

 

12/10/2018 7:39: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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