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spite of... vs .... but!
우리 교회는 지금 매일성경으로 전 성도들이 함께 묵상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얼마나 진척이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다소 일방통행적인 일이 되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묵상을 한 것을 매일 오전 카카오톡 단체 그룹방에 올리고,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질그릇 교회에 또 올립니다. 그리고 교회 홈페이지 묵상 나눔에 올리고, 페이스 북(Facebook) 에 있는 질그릇 교회 페이지에 올립니다. 오히려 한국이나 선교지에 있는 분들이 반응이 있습니다.
저로서는 최선을 다해 묵상한 것을 나누고 있습니다. 제가 묵상을 잘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저의 묵상이 기준이 될 만한 그런 묵상이라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저의 이러한 행위가 온 성도들이 말씀을 읽고, 대하고, 묵상하는데 있어서 함께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이를 격려하고 유지하고 동력화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사실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낼 때 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부담을 느끼거나, 카카오톡 알림 소리가 여러분의 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묵상이라는 게 원래 개인적이고, 실천 가능하고, 적용 가능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제가 나누는 묵상은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목회적 차원에서 성도 여러분 입장을 고려하여 묵상을 시도하기 때문에, 원래 묵상이 의도하는 것에는 조금 벗어나 있기에 유효하지 않거나 적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예레미야서를 묵상하면서 이런 저런 형편 가운데 마음에 부딪혀 오는 것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거룩한 삶에 대해 깊이 다가옵니다. 목사라고 다 혹은 늘 거룩한 삶과 생각에만 붙들려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현 시대에 이런 저런 가짜 뉴스들이 우리의 분별력을 흐리게 하는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를 통해 직접적으로 선포되고 전달됨에도 불구하고 혼돈 가운데 악으로 치닫게 되는 남유다 말기의 형편이 저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발견하면서 이상하게도 거룩에 대한 도전이 조금씩 조금씩 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올라 옵니다.
하나님은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의 사랑으로 말씀하시고 때로는 징계하시고 기다리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끊임 없이....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과 저는 좀 다르게 반응합니다. “하나님, 그런데요!!. 하지만요~!!” 하면서 세상의 법을 따릅니다.
내가 사는 세상의 구심력과 힘의 원리와 처세의 논리에 자꾸만 끌립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한 삶이 지혜롭기도 한 것 같고, 현실이라는 열매로 나의 삶에 작용하기에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게 즐겁지 않습니다. 여전히 내 안에는, 우리 안에는 세상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주인 행세를 합니다.
감사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상점에 가면 벌써 성탄절 장식이 눈에 들어옵니다. 시즌의 변화를 통해 세상이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은 소비입니다. 소비로 유도하고 소비를 격려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절기의 의미는 자꾸만 퇴색되고 다른 것들이 우리를 더욱 자극합니다.
말씀이 나를 주장하고 말씀 앞에서 진정한 감사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반응하는 이 계절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