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좋은 글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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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로슬라브 볼프는 기억되는 상처는 경험되는 상처라고 했다. 과거에 다른 사람에게 입은 상처를 기억하는 한 그것은 계속 우리를 아프게 하는 현재적인 경험이 된다. 기억하는 과거를 구속하지 않으면 진정한 현재의 구속도 없다. 우리를 그 고통스러운 과거에 완전히 매이게 한다. 구속되지 않은 기억을 통하여 과거에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 계속 우리를 고문한다. 그가 더 이상 우리 곁에 있지도 않고 우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는데도 계속 우리 안에서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를 미움과 분노와 원한의 감옥에 갇혀 고통 받게 한다. 과거에 우리를 아프게 한 그 사람이 지금도 우리 안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를 자꾸 생각하고 묵상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치밀고 우울해지고 불행해진다. 마치 그가 우리 안에 충만해서 우리를 통제하는 것 같다.

우리가 그를 계속 미워하고 저주한다고 해서 그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는다. 우리만 더 손해 보는 거다. 그에게 되갚아주기보다 우리가 더 철저히 억압당한다. 이보다 더 밑진 장사는 없다. 이렇게 자신이 손해 보고 고통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용서는 필요하다. 용서의 가장 큰 유익이 먼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용서는 미움과 원한의 감옥에 갇힌 사람을 해방하는데 그렇게 해서 가장 먼저 풀어준 포로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발견하게 된다. 용서는 참 어렵다. 그러나 용서보다 더 어려운 것은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2.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매일 하루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주기도의 다섯 째 간구, 우리 죄를 사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여섯 째 간구,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고 한다. 신자의 삶은 매일 시험 받는 삶이다. 예수 믿는다고 이 땅에서 반드시 복 받지는 않는다. 신자가 이 땅에서 꼭 받는 것은 복이 아니라 시험이다. 예수를 믿지 않았으면 우리에게 없었을 시험이 있다. 우리를 대적하는 자 사탄이 우리를 시험한다. 우리 자신이 우리를 시험 들게 한다. 우리는 안팎으로 시험하는 세력에 의해 우겨 쌓임을 당했다. 우리 좌우편에 시험이 도사리고 있다. 칼빈은 우리 왼쪽에 있는 시험은 가난과 멸시와 시련이라면 오른편에 있는 시험은 부와 권력과 명예라고 했다.

칼빈을 따라 루터도 왼편에서 쓰러지는 사람이 천 명이라면 오른 편에서 쓰러지는 사람은 만 명이라고 했다. 가난과 시련이라는 시험보다 부와 권력과 성공이라는 시험에서 열 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실족한다는 것이다. 왼편에 있는 시험을 잘 통과한 사람들도 오른 쪽에 있는 시험에 걸려 대부분 넘어진다. 가난보다 부의 시험을 이기기가 더 어렵다. 낮아졌을 때보다 높아졌을 때 교만의 시험에 빠지기 쉽고, 무명했을 때보다 유명해졌을 때 인기와 명성의 유혹에 쓰러지기 쉽다. 이 두 가지 시험이 우리를 테스트하고 단련한다. 낮아짐이 우리가 바닥에서도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는지를 시험하고 훈련한다면, 높아짐과 명성이 우리가 변함없이 낮은 마음으로 행하는지를 더 고강도로 시험하고 단련한다. 신자는 좌우편의 시험, 가난과 부, 낮아짐과 높아짐, 비천함과 존귀함, 무명함과 유명함의 시험을 통과하면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져간다.

<박영돈 목사님 글을 전제합니다.>

7/29/2019 7:08: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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