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강림 주일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을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온 성도들과 함께 묵상하는 삶을 훈련하기 위해 매일 성경 본문으로, 주일에도 주어진 본문으로 설교를 하기로 하였기에 특별히 성령 강림주일과 관련된 설교는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교회나 개인 신앙을 성찰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역사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역사의식이나 역사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고 자기를 성찰하는 것에 있어서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성령에 대한 이해에 대한 무관심, 그 반면에 극단적 경험주의가 존재합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 안에 내재 되어 있는 경향입니다. 이로 인한 작용과 반작용. 혹은 정-반-합의 반응들은 역시 기독교회의 역사, 신학의 역사에 반복됩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위주로 정리를 합니다.
성령은 인격이십니다. 어떤 능력이 아닙니다. 어떤 기운이 아닙니다. 그분 역시 말씀 그 자체이십니다. 말씀을 기록하실 때 성령이 역사하셨다고 합니다(딤후 3:16). 성령님은 사역하실 때도 말씀을 넘어서서 사역하시지 않습니다. 인자로 오신 예수께서도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사역하셨듯이 성령도 그러하십니다. 서로 존재하시고 서로 상의하시고 서로 종속되시고 서로 존중하시며 서로 협력하십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며 이 존재로부터 사역하십니다.
성령님의 존재와 사역하심에 대한 관점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는 놀라운 약속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삶에 맺을 수 있는, 그리고 맺어야 하는 열매, 성품, 인격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분명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더욱 분명한 것으로부터 알아가고 깨달아가 가고 접근해 가고 해석해 가는 것이 성경 해석 방법에서 중요한 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안정감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을 알아야 자신을 잘 알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나의 존재됨(Being)과 삶(Doing)을 영위하는 거룩한 이 세상에서 삶은 아주 중요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내주하신다는 놀라운 약속과 선포는 감격 그 자체입니다. 그 감격은 나에게 중분한 감사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삶의 열매에 대한 갈망과 동기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육에 속한 나의 본성은 그분의 인격적인 존재하심과 사역하심에 반응하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저 나의 본성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려는 것은 십자가를 추구하는 결단을 요구합니다. 성령에 대해 말하는 것과 성령께 순종하는 삶의 괴리를 극복하는 노력은 평생의 과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