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재회
《논어(論語)》에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학이시습(學而時習) 불역열호(不亦說乎)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낙호(不亦樂乎)^라... 지난 주간 동안 이 글귀를 를 경험하게 되는 귀한 분들과의 만남이 있어습니다.
현 시대에 여러가지 이유로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많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관게를 쌓아가지만 겉치레의 만남으로 지나치는 만남이 얼마나 많은지요... 분주한 일상을 넘어서서 그런 가운데 귀한 벗을 넘어 삶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朋"이 되어 주신 두 분의 캘리포니아 방문과 만남에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한 7년 전에 어떤 훈련 모임에 가서 선교에 대하여 이틀, 저녁 시간에 나눈 적이 있습니다. 작은 숫자의 사람들이지만 이곳 미국 삶에서 정기적으로 훈련 받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강의를 다 마치고 몇 달 후에 식사 모임에 초대 되었습니다. 그 훈련에 참가한 한 사모님이 계신데 목사님이 이제 곧 공부를 마무리하고 한국 교회로 귀임하는데 남편 목사님이 꼭 식사 대접을 하고 싶으셨다는 것입니다. 영문을 모를 일이었습니다. 요지를 전한다면 그 훈련 과정을 통해 사모님이 많이 변화를 받는 계기가 되셨는데 저의 나눔이 큰 도움이 되어 한국 가시기 전에 꼭 식사 대접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흔치 않은 일이었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몇 달 후 한국에서 후원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목사남이 한국에 가셔서 작은 교회에서 담임사역을 하시게 되었는데 기도하는 중에 저희 가정에 후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셔서 교회 성도들에게 나누고 후원을 결정하시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때 저희 가정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때였습니다. 후원금의 액수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큰 위로의 통로가 되어 주셨습니다.
멀리 한국서 안식월 차 그 목사님과 사모님이 오셔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저에게 너무나 귀한 손님이라 대접하러 파사데나로 오랜만에 나섰다가, 오히려 귀한 섬김을 받고 격려를 받았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적으시나 담임목사로서는 저보다 훨씬 선배이십니다. 교제 가운데 귀를 기울이니 나의 스승이 되고, 나의 삶과 묵상 나눔에 경청해 주시니 상호 학습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니 감개가 무량하였습니다. 그 만남 가운데 저를 참으로 배려하여 주시고 귀 기울여 주시며 배움의 자세를 견지하는 젊은 목사님과, 그 남편 목사님을 조용히 높여 주시는 사모님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의 고민에 작은 훈수를 한 수 두었습니다. “ 주신 말슴 기도하며 적용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샌프란시스코로 올라가는 길에 긴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저에게 오히려 격려가 되는 뜻밖의 재회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