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날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가정은 우리가 경험하는 사회 혹은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이며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끊임없는 상호 작용은 시작됩니다. 요즘 과학의 발달로 밝혀진 것은 태아로 있을 때로부터 주변 상황을 인지하고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법을 배운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관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습득하고 개인의 고유한 인격을 소유하며 자라는 일이 이미 이때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날 저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늦둥이라고 꽤 나이가 들기까지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잠을 잤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어머니는 6.25 사변(한국전쟁)때 인천으로부터 부산까지 피난 오신 이야기를 자주 해 주셨습니다. 거의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겹지가 않았습니다.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죽고, 어느 한 곳을 지나실 때는 북한군이 저 멀리 있는데 숨을 죽이고 논 사이로 숨어 피신하셨다고 합니다. 발이 피범벅이 되는 것도 모르고 걷고 또 걸으셨답니다. 그리고 부산 와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셨답니다.
저는 청소년기에 거의 사춘기를 거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개의 사춘기 아이들이 그러듯이 다른 친구와 비교도 하지 않았고 제 스스로에 대해 함부로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이나 원망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시고 가정을 이루시고 나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주시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 맘 한 구석에는 어머니의 한 많은 인생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자라났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착하고 좋은 아들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어머니 편에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이내 모든 갈등이 해결되곤 하였습니다.
늘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면 90도 인사를 꾸벅 꾸벅하는 저에게 “부모님이 뉘시냐? 참 착하게 잘 기르셨네..”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저의 본성이 착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어쩌면 긍휼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그러한 마음이 사랑이라는 큰 단어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문득 깨답습니다. 요즘 우리는 가정으로부터 수많은 어려움을 겪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계는 더욱 잘게 쪼개어 지고 핵분열 합니다. 소통이 잘 되지 않습니다. 관계 형성이 어렵습니다. 어머니의 날, 따뜻한 이불 속에서 때로는 눈물 흘리며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야기 들려주신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